브레이크등 안 들어왔으니 액셀 밟았다?… “급발진 여부, 제동 등만으로 단정 안 돼” [뉴스+]

2024-10-05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소비자 입증 부담 완화될까

“차량 급발진 발생 가능성 인정해야 대책 논의 가능”

“비행기처럼 전자제어장치 다중화” 등 예방책 제언도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급발진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전직 차량 엔진 전자제어장치(ECU) 엔지니어인 주식회사 로데이터 박정철 변호사의 발언이다. 엔진 ECU는 차량에 있는 센서들로부터 데이터를 입력받아 최적의 엔진 상태를 계산하고 이를 구동 부품에 전달해 엔진 출력을 제어하는 장치다.

박 변호사는 “ECU의 구조가 복잡한 만큼 차량 출력 결함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매우 다양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급발진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엔진 ECU 개발부터 양산 차량 후속 관리까지 맡았던 전직자가 ECU 결함으로 인한 차량 급발진 발생 가능성에 대해 증언한 셈이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는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결함을 증명하도록 하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 개정 필요성을 논의하는 ‘제2차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 참여연대,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안양동안갑) 등 여야 의원 10명, 반주일 상명대학교 교수, 이호근 대덕대학교 교수, 박정철 변호사, 국토부 관계자, 한국자동차 모빌리티 산업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차량 급발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CU 엔지니어로 수년간 K7, 그랜저, 제네시스 G80 등 현대·기아자동차 엔진 ECU 개발에 참여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박정철 변호사는 “급발진의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이후 대책을 논의할 수 있지만, 이를 부정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사고기록장치(EDR)로 브레이크 작동 여부를 파악하는 게 관건이 아니라는 비판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급발진 사고의 핵심은 차량이 운전자의 의도와 달리 갑작스럽게 가속을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며 “이후 운전자가 당황해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밟았다면 이는 급발진 현상의 후속 결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반주일 교수는 급발진 인정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혼다자동차는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을 인정하고 차량 17만5000만대를 리콜했다”며 “미국 법원에서 전자식 스로틀 제어시스템 ETCS 결함으로 인한 도요타 캠리의 급발진을 인정한 북아웃(Bookout) 소송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행기에서 급발진이 일어났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며 “비행기는 전자제어장치 다중화를 생명처럼 여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량 급발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을 향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급발진 발생 가능성이 있는 만큼 소비자가 결함을 입증하게 하는 현행법을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윤영미 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는 “막대한 자금력과 정보를 가진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소비자가 첨단기술이 집적된 차량의 결함을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행 제조물 책임법 제3조의2는 피해자가 ‘제품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고, ‘해당 손해가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3가지 사실을 증명해야 ‘결함으로 인한 손해 발생’을 인정하도록 규정한다.

제22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현재까지 소비자의 결함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8건 발의돼 모두 계류 중이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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