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석유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시추를 중단했다.” 1977년 2월 대한민국 정부의 발표 내용이다. 1년가량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영일만 유전 개발 소동’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전후 맥락을 짚어보자. 75년 12월 포항 영일만 일대에 뚫었던 시추공에서 드럼통 한 통 분량의 검은 액체가 나왔다. 산유국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인 76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몸소 “포항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부푼 꿈은 곧 꺼졌다. 원유는 본디 타르부터 천연가스까지 다양한 탄화수소 화합물이 섞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일만에서 뽑아낸 검은 액체는 대부분 경유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추 결과물에 경유가 섞여 들어갔거나, 최악의 경우 누군가 청와대를 속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을 일종의 ‘헛소동’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그러나 영일만 유전 개발을 그렇게 폄하할 수만은 없다. 1970년대 석유 파동의 한복판에서 석유 매장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 탐사한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석유공사는 울산 남동쪽 58㎞ 해상에서 가스전을 발견하고, 2004년부터 2021년 말까지 해당 지역에서 동해1·2가스전(사진)을 개발했다. 우리는 결국 ‘산유국의 꿈’을 이루었던 것이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브리핑을 진행한 것은 성급한 일이었다. ‘공적 가로채기’라는 비판도 가능할 듯하다. 얼마 전 발표된 1차 시추 결과를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왕고래는 총 7개의 유망구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선진국이란 실패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나라다.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초당파적 협력을 통해 먼바다의 큰 고래를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