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의 생략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06-30

두 사람이 서로 오른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악수(握手)는 세계 공통의 인사다. 악수의 유래는 중세 유럽의 기사들이 지켰다고 하는 예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의 오른손은 총이나 칼 등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데 이용된다. 따라서 무기가 없는 오른손을 상대방에게 내미는 행위는 ‘나는 당신과 싸울 뜻이 없소’ 하는 호감의 표시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손을 흔드는 것은 ‘옷소매에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는 서양은 물론 한국 등 동양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왼손잡이의 경우는 어떨까. 평소에는 왼손을 주로 쓰더라도 악수할 때만큼은 오른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상대방이 악수를 청하는데 이를 거부한다면 모욕을 가하거나 경멸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2023년 국내에서 개봉해 큰 화제가 된 영화 ‘오펜하이머’의 끝부분에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가 백악관 행사장에서 만난 로버트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부인 키티(에밀리 블런트)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키티는 이를 차갑게 외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작 오펜하이머는 텔러와 악수를 나눴는데도 말이다. 극중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이때 텔러가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남편한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에 격분한 키티는 평생 텔러와 화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악수를 하고 난 뒤의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4월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의 일이다. 훗날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각각 두 차례씩 지낸 고건이 당시 민정당 후보로 전북 군산에 출마했다.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이 호남에 일으킨 이른바 ‘황색 바람’이 거셀 때였다. 다급해진 고건은 유세를 위해 지역구 내 한 공장을 방문했다. 종업원 2000명 거의 대부분이 여성인 사업장이었다.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고건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모습이 몇몇 종업원의 눈에 띄었다. 당장 ‘손을 씻으려면 악수는 뭐 하러 했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결국 고건은 평민당 후보에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민심을 얻기 위해 한 악수가 되레 ‘악수’(惡手)가 된 셈이다.

27일 열린 미국 대선 TV 토론회에서 현직 대통령이자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과 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맞붙었다. 이들이 대면한 것은 2020년 대선에 앞서 실시된 토론회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두 사람은 인사는커녕 악수도 생략했다. 악수 요청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아예 둘 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4년 전에도 악수를 건너뛰었으나 당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이었고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중범죄자”로 규정하며 “도덕성이 도둑고양이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이 뭐라고 하기만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본인도 모르는 것 같다”고 조롱하기로 일관했다. 우리가 알던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이 맞는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