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스는 한이 서린 장르다. 미국 남부 끝없이 펼쳐진 목화밭에서 흑인 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가 그 뿌리다. ‘악마의 노래’라는 악명은 현재에 와서 ‘그만큼 중독적인 음악’이라는 뜻으로 좋게 풀이되지만, 별칭의 기저에는 백인 기득권층의 못마땅한 시선이 담겨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의 결속력과 저항정신이 담긴 노래가 듣기에 좋더라도 곱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전설에 따르면, 진실된 음악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있다. 이 재능은 공동체를 치유하는 힘이 있지만, 악(evil)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한 <씨너스: 죄인들>은 이러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은 목사의 아들 ‘새미’(마일스 케이턴)가 패잔병의 모습으로 교회에 들어선다. 그의 한 손에는 부서진 기타가 들려 있다. 블루스와 기타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새미다. 그에게 아버지는 “죄를 뉘우치면 된다”고 말한다. 평화로운 대낮의 교회와 달리 어두컴컴한 저녁,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섬광처럼 번쩍인다. 영화는 하루 전으로 돌아가 천국과 나락을 오간 새미 일행의 24시간을 보여준다.

미리 말하자면, <씨너스: 죄인들>은 단순 음악 영화가 아니라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미국 남부고딕 공포물이다. 남부고딕은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사건을 다룬다. 그러면서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녹인다.
영화 초반은 미국 남부 마을에서의 로드무비처럼 보인다. 새미의 사촌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은 갱단 소속으로 마을에서 악명이 높다. 미국 시카고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미시시피에 돌아온 형제가 큰돈을 벌기 위해 노래 주점 ‘주크 조인트’를 여는 첫날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쌍둥이는 새미를 데리고, 술집에서 무대를 꾸밀 음악가와 요리를 조달할 식료품점 부부 등을 스카우트하러 다닌다.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짐 크로우 법’이 건재하고,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가 암암리에 활동하는 시대다. 영화는 인물들 간 갈등에서 이를 세련되게 보여준다. 새미 일행이 차를 타고 지나치는 도로에는 흑인 무리가 노역 중이다. 백인들의 집단 린치 끝에 누명을 쓴 지인을 발견한 피아니스트 ‘슬림’(델로이 린도)은 울분을 꾹꾹 누르며, 낮고 구슬픈 음률을 읊조린다. 블루스에 서린 한이 와닿는 순간이다.
성황리에 개업한 주크 조인트에선 한시름 풀어놓고 신나게 뛰노는 블루스 파티가 펼쳐진다. 특히 새미의 목소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듯한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아일랜드계 백인 뱀파이어 ‘렘믹’(잭 오코넬)의 구미에 당겼다는 데 있다. 그때부터 영화는 뱀파이어에 대항하는 생존물로 급선회한다. 갑작스러운 불협화음이나 고음으로 불안을 고조시키던 배경음악이 그 갑작스러움을 상쇄한다. 뱀파이어에 대항하는 하룻밤을 담는다는 데에서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신선한 변주로 느껴지기도 한다.

장르를 슬기롭게 넘나드는 수작이다. 흑인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한 마블 <블랙 팬서> 시리즈로 잘 알려진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델타 블루스의 초석을 놓은 찰리 패튼과 로버트 존슨의 고향 미시시피는 쿠글러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지금껏 내가 만든 작품 중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감독은 말했다.
<씨너스: 죄인들>은 북미에서 지난 4월 개봉 후 2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오리지널 IP 작품으로서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7%, 팝콘 지수 96%의 관객 호응을 이끌어 냈다. 마이클 B. 조던의 훌륭한 쌍둥이 1인 2역 연기와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 감독이 미시시피로 블루스 투어를 떠나 심혈을 기울인 사운드트랙, IMAX 65mm 필름 카메라로 표현한 미국 남부의 광활함까지. 보고, 듣고, 생각할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28일 개봉. 137분.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