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번호판을 단 평양 자가용과 북한의 미래

2025-11-27

최근 평양 거리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가용을 의미하는 노란색 번호판을 장착한 차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일부 거리에선 교통 체증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 당국이 개인 차량 소유를 규정을 완화하면서다. 지난 2월부터 주민들은 돈만 있으면 자가용을 살 수 있게 됐다. 국가가 지정한 판매소를 통해 차량을 구매해야 하고, 가구당 1대만 소유할 수 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빠르고 뜨겁다. 이미 수 천대의 차량이 평양 시내를 달리고 있고, 공급이 모자라 일정기간 대기해야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주민들이 구매하는 차량 대부분은 중국산 중저가이지만 일부는 1만 3000달러(약 1900만원)에 달한다. 북한 소비 수준에선 엄청난 액수다.

북, 사치품 소비 분위기 확대

신흥 부자들 자가용 구매 늘어

체제의 잠재적 위협 될 수도

지난 15년 동안 북한에는 휴대전화와 고급 가전제품 소비재 시장이 점진적으로 확대돼 왔다. 최근에는 가사도우미·개 사육 서비스·커피숍과 같은 서비스업도 확대됐고, 아파트 매매나 사교육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자가용은 소비확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일부 북한 주민에 한정돼 있는 건 사실이다. 특권을 이용해 부를 축적한 기존 관료층, 그리고 국경 무역이나 장마당 상행위 등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북한에선 ‘돈주’라 부름)의 씀씀이는 상상 이상이다. 이들이 지금의 소비를 주도하고 있으며, 숨겨왔던 외화가 시장에 풀리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런 소비의 확산은 북한 사회의 분절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북한 사회에서 소비문화의 확대, 그중에서도 자가용의 확산은 체제 내부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평양의 핵심 권력층은 늘 특권층으로 존재해 왔지만, 일부 특권층 이외의 간부들조차 과거에는 관사와 공식 연회의 음식 정도만으로도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돈주’가 북한에 등장했고, 이들은 값비싼 식당과 자동차로 부를 과시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 체제는 평등을 표방하던 명분마저 점차 퇴색되고 있다. 혁명 정신을 강요받으면서 자란 평범한 주민들이 이런 변화하는 풍경을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 당국은 2009년 11월 사유자본 축적을 차단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시장을 폐쇄하며 개인의 자산을 없애려고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이런 억제정책은 곧 철회됐다. 지금 북한 정권은 더 이상 평등을 외치며 소비 의욕을 누르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물러서는 분위기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 사이에 확산하는 소비 문화는 북한 정권에 여러 고민을 던질 게 분명하다. 우선 국가 구조의 동력 약화다. 한때 북한에서 성공의 유일한 경로는 당이나 국가 조직에서 승진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안정적이고 높은 소득은 국가 기관 바깥의 시장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가에 대한 충성 강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국가에서 부여한 직책을 부의 축적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부패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이 ‘간부 사상교육 강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국가가 더는 주민들의 소비를 통제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도 북한 체제엔 위협 요소다. 사치재의 맛을 본 주민들이라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생리다. 자가용 다음은 여가나 여행일 것이다. 신흥 부유층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도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이 가장 경계하는 ‘문화·정보 유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치재 소비를 정책적으로 막기 어려운 상황은 체제 정당성에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 삶의 목적이 혁명과 자주국가 수호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만약 주민들의 관심이 부의 축적과 사치품 소비 경쟁으로 이동한다면 북한은 민주화 이전의 한국과 큰 차이 없는 소비 중심 사회가 될 게 분명하다. 북한 정권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최근 주민들의 소비 패턴 변화는 억제 정책을 펴 왔던 북한 당국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보여준다. 북한 사회가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문은 이제 열렸고, 닫히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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