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훈풍에도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던 삼성전자 반도체가 반격에 나섰다. 특히 삼성전자는 든든한 파트너 사이를 구축해온 AMD의 AI 칩 시장 입지 강화에 따라 수혜가 예상되는 데다, 또 다른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공급망 다변화 시 반등 기회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AI가 촉발한 반도체 시장의 슈퍼사이클 온기를 드디어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에 밀려나야 했던 D램 시장 왕좌 자리도 하반기에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AMD는 지난 6일 오픈AI에 연 수백억달러 규모의 AI 칩을 공급하는 다년 계약을 맺었다. AMD는 이 과정에서 오픈AI에 자사 지분 최대 10%를 인수할 수 있는 주식 매입 계약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오픈AI는 AMD 주식 총 1억6000만 주를 1주당 1센트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이번 계약을 통해 AMD는 오픈AI에 내년 하반기부터 1GW 규모 차세대 AI 가속기 MI450을 공급하게 된다. MI450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6세대인 HBM4가 탑재될 예정이다.
AMD는 엔비디아와 AI 칩 시장을 둔 경쟁자다. KB증권 및 블룸버그에 의하면 AI 데이터센터 GPU 시장 점유율은 엔비디아가 97%, AMD가 3%로 사실상 엔비디아의 독무대다. 다만 이번에 AMD가 오픈AI 계약건을 따내면서 2028년 GPU 시장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쟁사인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인 젠슨황도 최근 외신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AMD의 오픈AI에 대한 지분제공은) 상상력이 돋보이고 독특하며 놀랍다"며 "내 생각으로는 영리하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AMD의 성과에 삼성전자를 주목하는 이유는 최대 수혜자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가 끈끈한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듯 AMD는 삼성전자와 든든한 파트너십을 맺어왔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삼성전자는 AMD의 AI 가속기에 HBM3E(HBM 5세대) 12단 제품을 전량 공급하며 돈독한 관계를 구축한 바 있다. 이에 이번 MI450에 탑재될 HBM4 공급자 역할도 삼성전자가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AMD의 AI 칩 시장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삼성전자에게도 고스란히 온기로 전해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삼성전자는 AMD MI350에 HBM3E 12단 제품을 전량 공급하며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미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삼성전자는 오픈AI-AMD 동맹의 최대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욱이 삼성전자는 AMD가 내년 하반기부터 오픈AI에 공급할 MI450에도 HBM4 물량의 상당 비중을 공급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향후 삼성전자의 AMD향 HBM 매출은 올해 대비 최소 5배 이상 증가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HBM 공급망을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다. 그간에는 엔비디아가 필요로 하는 HBM 물량 대부분을 SK하이닉스에서 소화해왔다. 삼성전자가 이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가게 된다면 이익 성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문턱을 넘기 위해 이미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 사이 엔비디아를 사로잡은 SK하이닉스는 최대 이익 달성 등 고공행진했다. 이로 인해 HBM 초기 대응에 실기한 삼성전자는 점점 뒤로 밀려났고 33년 만에 D램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줘야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HBM3E 제품을 리디자인하는 등 절치부심했고 최근 성과로도 이어지는 모양새이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 엔비디아 승인이 임박, 조만간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다음 격전지로 꼽히는 HBM4에서도 경쟁사 대비 가장 높은 성능(11Gbps)의 샘플을 엔비디아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HBM 시장에서 고전해오던 삼성전자가 점차 영역을 넓히며 매출 확대로도 이어질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에는 엔비디아 외 고객향 HBM3E 중심 판매를 이어가겠으나, 2026년 이후 엔비디아를 포함한 다양한 고객사로 HBM 매출이 확대되면서 HBM 출하량이 시장 평균을 상회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또한 "HBM 매출이 증가함에 따라 경쟁사와의 이익률 격차를 점차 줄여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