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세계 2위 시장’ 일군 英
세계적 중공업 도시였던 티사이드
한때 철강업 쇠퇴로 2만여명 실직
지역사회에 상권 침해 등 상처 남겨
2020년 ‘티스웍스’ 재개발 사업 시작
철강산업 부지를 탄소중립 산단 재편
과거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까지 진행
해상풍력 공급망 산업의 중추적 역할
정부, 수익성 제고·절차 간소화 등 지원
외국 업체 등 해외자본 유입도 긍정적
“밖에 보이는 구조물이 도거뱅크(Dogger Bank)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에 공급될 하부구조물입니다.”
지난달 26일 영국 티사이드(Teesside) 지역 내 티스웍스(Teesworks) 산업단지. 이 산단 관계자가 한국 기자들에게 주차장 너머로 누워 있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자재 수십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직경이 성인 키 5∼6배는 되는 이들 자재 단면에는 모두 제조사인 ‘GE 버노바’가 적혀 있었다. 미국 기업 GE의 에너지 전문 계열사인 GE 버노바는 북해 해상에 조성 중인 도거뱅크 단지에 주요 부품을 공급해 오고 있다.

도거뱅크 단지는 총 설치용량(A·B·C단지 합계 기준)이 3.6GW(기가와트) 규모로 건설 예정이다. 완공 시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된다. 여기 설치 예정인 터빈 수만 해도 13㎿(메가와트) 190기, 14㎿ 87기로 총 277기다. 도거뱅크 단지에 공급되는 하부구조물 등 부품 조립·출하가 단지로부터 약 130㎞ 떨어진 티스웍스 산단에서 진행 중인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중공업 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티사이드는 2020년대 들어 해상풍력 제조단지로 침체된 지역경제를 일으키고자 잰걸음을 하는 있었다. 도거뱅크 단지 사례에서 드러나듯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를 일군 영국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티사이드의 재도약을 뒷받침해 오고 있었다.

◆티사이드가 잡은 ‘두 번째 기회’
“2015년 SSI(Sahaviriya Steel Industries) UK가 문을 닫는 등 그간 우리 지역은 철강업 쇠퇴로 2만5000개 일자리를 상실했습니다.”
알렉 브라운 영국 레드카앤클리블랜드(Redcar & Cleveland) 자치구 의회 대표는 이같이 말하며 “최근 들어 해상풍력 공급망 등 탄소중립 산업 유치로 우리 지역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레드카앤클리블랜드·미들즈브러 등 5개 자치구로 구성된 티사이드는 20세기 중반까지 철강산업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중공업 도시로 영광을 누리다 1980년대 들어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으면서 대다수 업체가 문을 닫거나 외국계 기업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태국 철강업체인 SSI가 레드카 지역 제철소를 인수해 가동을 시작한 SSI UK 파산은 실업률 급등·상권 침체 등 지역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5년이 지난 2020년 옛 철강산업 부지를 탄소중립 산단로 재편하고자 하는 ‘티스웍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부지면적이 여의도 면적 6배인 1821만㎡ 티스웍스 산단에 2억5000만파운드(약 4700억원)가 투자됐다. 2021년엔 세금·관세 감면, 통관 절차와 각종 인허가 간소화 등 혜택이 적용되는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됐다. 브라운 대표는 “영국 중앙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핵심 사업으로서 티스웍스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며 “자유무역지대 지정으로 북해를 통해 해외로 나아갈 수 있는 전진기지로 활용 중”이라고 했다.

여기에 옛 철강업 숙련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까지 진행하며 인력의 질을 제고하고 있다는 게 레드카앤클리블랜드 자치구 측 설명이었다. 자치구 수석 책임자 브라이언 아처는 “중앙정부와 자치구, 산단기업이 태스크포스를 꾸려 정책 차원에서 재교육을 하고 있다. 철강 숙련 노동자뿐 아니라 젊은 청년까지 지역 대학에서 교육시켜 티스웍스에서 일할 수 있게 돕는 게 핵심”이라며 “레드카 지역 대학의 경우 해상풍력 터빈 위에 올라가서 정비 등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교과과정도 따로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티스웍스 산단에 입주했거나 예정인 업체가 현재 모두 66곳이다. 여기엔 해상풍력·수소·CCS(탄소포집) 등 관련 기업이 포함돼 있단 설명이다.
◆‘일자리’ 늘리는 해상풍력
이 중에서도 현재까지 티스웍스 산단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부문이 해상풍력 공급망 산업이다. 그간 영국이 과감한 보급 정책을 펼쳐온 덕이다. 현재 영국 해상풍력 누적 설치용량은 15.9GW로 우리나라(0.3GW) 50배 이상 수준이다. 5년 내 3배 이상인 50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 중 티스웍스 산단이 직접적으로 공급망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해상풍력 발전단지 규모만 해도 5GW를 넘어선다.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 중인 도거뱅크 단지 외에 블라이스2(Blyth2)가 60㎿ 규모 부유식 해상풍력 단지가 추진되고 있고, 소피아(Sofia)는 도거뱅크 단지와 가까운 곳에서 1.4GW 규모로 건설 중이다. 소피아의 경우 14㎿ 용량 터빈을 100기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현재 추진·건설 중인 단지 외에 영국 왕실자산공사(The Crown Estate)가 평가한 인근 잠재 발전용량이 72GW에 이른다. 이 중 실질적인 잠재 용량으로 평가되는 게 10∼16GW 수준이다. 정부는 이 잠재 용량을 실제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광역지자체인 티스밸리(Tees Valley) 소속 투자 유치 매니저 마이클 켄달은 “중앙 정부에선 CfD(계약차액제도)를 개편해 발전사업자 입장에서 수익성을 제고시키고, 우리는 계획입지 절차를 간소화하고 발전단지와 계통을 연계하는 것도 보다 빨리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 ‘먹거리’를 보고 GE뿐 아니라 덴마크 오스테드, 노르웨이 에퀴노르, 바르그논 등 해상풍력 업체들이 티스웍스에 진출하고 있다. 여기엔 우리나라 기업도 있다. 세아제강 자회사인 세아윈드가 3년 전 티스웍스 산단에서 착공한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공장이 다음 달 가동 예정이다. 하부구조물 종류 중 하나인 모노파일을 연간 150기 생산할 예정인 이 공장 부지는 36만㎡로 축구장 50개 정도 규모다.
티스밸리 측은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대한 해외업체 투자가 곧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다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켄달은 “우리는 해외자본이 들어오는 데에 큰 거부감이 없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세아윈드다. 단적인 예로 공장 허가를 받는 데 8주밖에 안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 세아윈드 공장 건설과 이후 운영으로 생겨난 일자리 수는 1750여개 수준이다.
※본 기사는 한국기자협회와 (사)넥스트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
티사이드=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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