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일부 언론에서 음식점 원산지 인증제가 폐지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먹거리 안전관리에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학교급식 원산지 관리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아이들의 밥상이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곧 정부의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는 이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번 '식품산업진흥법' 개정의 핵심은 '인증제 폐지'이지 '표시제 폐지'가 아니다. 현재 음식점과 가공식품에는 두 가지 제도가 있다. 하나는 소비자가 농수산물과 음식점 식재료 등의 원산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알리는 '원산지 표시제', 다른 하나는 음식점이나 식품 제조업체가 사용 식재료의 95% 이상을 동일 국가산으로 사용할 때 정부가 인증을 부여하는 '원산지 인증제'다.
문제는 인증제가 현장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계절별 수급 변동이 심한 음식점에서 전체 식재료의 95% 이상을 동일한 국가산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2024년 기준 가공식품 52개 업체 253개 품목이 인증을 받았지만, 음식점은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10년간 인증 실적이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결과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로 남았다.
이에 정부는 2024년 정부 합동 '인증규제 정비방안'을 통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음식점에 대한 원산지 인증제를 폐지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표시제 중심으로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음식점 '원산지 인증제'가 폐지되더라도 '원산지 표시제' 의무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국민이 식당에서 먹는 쌀, 김치, 쇠고기, 돼지고기 등 29개 주요 식재료의 원산지 정보는 지금과 같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원산지 표시의무 위반에 대한 단속과 처벌 역시 지금과 동일하게 엄격히 조치하여 식품안전 관리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학교급식 식재료 관리도 '학교급식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현행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다.
또한 기존 원산지 인증제가 국내산 농산물 소비 촉진도 목적으로 하고 있었음을 고려해, 농업인과 식품기업의 계약재배를 활성화하고 국산 농산물 사용 시 자금을 지원하는 등 국내산 농산물 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할 것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국민의 알권리와 먹거리 신뢰를 높이기 위해 비효율적 제도를 정비하고 실질적 관리체계를 강화한 것이다. 표시제의 이행률은 97%를 넘어섰으며, 농림축산식품부는 앞으로도 관계기관과 협력해 단속과 행정지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한편 정부는 원산지 관리뿐 아니라 먹거리 안전 전반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축산물은 '이력제'를 통해 소비자가 구매한 고기가 어느 농장에서 생산돼 어느 도축장에서 처리되고, 어디에서 포장·유통됐는지를 이력번호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농산물의 경우 생산에서 유통까지 농약·중금속·미생물 등 위해요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를 운영 중이며, 2024년 기준 12만 3천여 농가가 인증을 받았다. 정부는 GAP 농가의 위생관리와 판로 지원을 확대해 소비자가 더 안심할 수 있는 농산물을 공급할 계획이다.
농·축산물 생산 단계에서도 안전을 강화하고 있다. 중소농 중심의 스마트팜 표준모델을 개발해 온도·습도·양분을 자동 제어하는 정밀농업을 확산하고, 축산분야에서는 노후 축사를 현대화한 스마트 축산단지를 확대 중이다. 이는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폭염·폭설 등 기상악화에 대응하며 사육환경의 안전성과 품질을 함께 높이기 위한 조치다.
또한 정부는 농약·화학비료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해 2030년까지 유기농 재배면적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친환경농업직불제를 확대해 친환경 농산물 재배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고, 유기농업 자재 지원과 학교·공공급식에서의 친환경 농산물 사용을 확대함로써 아이들의 밥상부터 국민의 식탁까지 보다 안전한 먹거리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농축산물 생산과정에서 미등록 농약이나 항생제 사용을 금지하는 허용물질목록관리제(PLS) 정착으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농축산물의 유통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우리 농식품 산업은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기간산업으로서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성장해 2023년 기준 824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되었다. 이제 양적 성장의 다음 단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질적 성장이다. 정부는 생산부터 소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해 나갈 것이다.
먹거리 안전은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 완성될 수 없다. 생산자·유통업체·소비자가 함께 신뢰의 고리를 이어갈 때 비로소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식탁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지키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 선진국'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신뢰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원산지 인증제는 사라지더라도, 먹거리 안전은 더욱 강해지고, 국민의 식탁은 한층 더 든든해질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늘도 국민의 밥상 앞에서 가장 먼저 책임을 다하는 정부가 되겠다. 국민의 식탁을 든든히,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필자〉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입직한 뒤 기획조정실장, 부원장, 농업관측센터장,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 균형발전연구단장 등을 역임하며 농업·농촌 정책 연구를 이끌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본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어촌분과위원, 국토정책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이사와 한국지역개발학회·한국농촌계획학회 부회장으로도 참여했다. 인구감소 시대 농촌의 삶의 질 향상과 균형발전 정책 연구에 기여해온 전문가로, 2023년 12월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맡고 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