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진보 쪽 정치인들의 인지도와 평가가 많이 상승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울산에는 보수 깃발만 꽂으면 다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풍토와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깃발만 꽂는다고 다 되기야 하겠나. 그런데 몇몇 어른들이 그런 얘기를 하긴 한다. 가만히만 있으면 내 지역구는 3선 그냥 간다고. 그러니 10년, 20년 후에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내가 당선되고 안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옳음을 추구하고 옳은 언행을 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공적 영역에 들어온 이상 공적인 옳음을 지향해야만 한다. 이 가치를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비난받거나 낙선하더라도 꾸준히 이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울산은 굉장히 역동적인 도시다. 울산의 보수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보수도 있고, 또 개중에는 군사독재 잔재를 추종하기도 하고, 또 개중에는 그냥 보수라고 하는 이도 있고, 그리고 보수로서 고민을 많이 하는 이도 있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스펙트럼은 엄청 넓다. 단순히 보수와 진보로 나눌 문제가 아니다.
이 넓은 스펙트럼이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곳이 바로 울산이다.
Q. 국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을 때 선배 의원들이 오면 조곤조곤하게 할 말을 다 했다. 그 모습에 정말 속이 단단하거나 뻔뻔하다는 말들을 한다. 어땠나, 실제로는? 떨렸나?
떨리지 않았고, 간절한 마음이었다. 탄핵 찬성을 하면서 동료의원을 설득하겠다고 했고, 실제 이틀 사이에 서른 명쯤 설득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 담화가 있고 새 원내지도부가 결성된 뒤 급격하게 통제력이 올라가면서 탄핵 찬성하는 의원들이 거의 없어지는 상황으로 바뀌어버렸다, 분위기가. 이대로 1차 탄핵이 통과되지 못하면 불안정한 대통령이 더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겼다. 극단적 선택이란 게 결국 군사 반란이지 않겠나. 이건 처벌이 너무 세다.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이런 중죄다 보니 관련 군인들이 어차피 죽는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거든. 전쟁이라도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 1, 2주 사이에 제2차 비상계엄을 내릴 수 있다는 많은 우려가 있어서 국회 잔디밭에 헬리콥터 못 내려오게 차량으로 막고 있었고, 사법 체포조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돌고 그랬다. 말 그대로 흉흉했다.
국가 불안 요소가 너무 컸다. 반드시, 빨리 탄핵을 시켜야 했다. 마음이 정말 급했는데, 탄핵은 우리 당에서 표가 나와야 통과 가능하지 않나. 그런데 그 가능성이 작았다. 그래서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피켓 시위를 하면서 두 가지를 기대했다. 하나는 내가 욕받이가 되면 다른 소장파 의원들이 찬성 투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또 하나는 내 움직임으로 인해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바뀔 걸 기대했다. 두 효과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탄핵 표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당론에 따라주길 원하는 선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양심상 따라갈 수 없었으니까.
Q. 삶의 태도에 영향을 준 누군가가 있나?
많은 이에게 영향을 받았다. 정치를 시작하면서 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다. 그들이 살아온 모습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대의와 옳음을 위해 희생하고 한결같이 초지일관한 사람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쳤고, 생명에 위협을 가한 적들을 모두 용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하나회를 척결했다. 매우 위험한 일인데 밀어붙였다. 정말 큰 사람들이다.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 성장 과정이 편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에 다녔고, 대학 때도 학비와 생활비를 내가 벌었다. 울산에 정착할 때도 녹록지 않았다. 변호사로 자리를 잡고 나니 시기와 질투도 많이 받았다. 시기와 질투 때문에 불이익이 컸고. 근데 제가 살아오면서 기댈 언덕이 없었다 보니 오직 혼자 힘으로만 버티며 극복해야 했다. 그 삶의 경험들이 내가 좀 더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Q. 울산 사람이 아닌가?
2012년 3월에 울산에 처음 왔다. 자라기는 대구에서 자랐다. 대구에서 초, 중, 고를 다 마쳤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했다.
어디에서 살지를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여기서 태어났으니 여기서 살아야 해, 이렇게 수동적으로 끌려오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대한민국 지도를 펴놓고 울산을 선택했다. 바다가 있고 산이 있고, 너무 큰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시골도 아니고. 인구 100만으로 딱 좋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 울산 사람들 정 많다는 소문에 이끌렸다.
Q. 변호사로 자리 잡은 뒤 받은 시기와 질투가 뭔가?
우리 변호사 업계에서는 유리천장처럼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가 있다. 검사장 출신이냐, 부장검사 출신이냐, 이런 걸 중요하게 본다. 난 울산에 연고도 없는 로스쿨 출신이다. 골품제로 봤을 때 변호사들 사이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품계에 있는 사람이다.
정말 열심히 했다. 울산에서 변호사 생활 시작할 때 한 달에 하루 정도만 쉬고 주야장천 사무실에서 일만 했다. 날 찾아온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모자라서 나 때문에 의뢰인이 피해를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이 의뢰한 일의 결과가 좋게 나올 때가 많았고, 나를 찾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한때 울산에서 사건을 제일 많이 맡은 변호사가 돼버렸다. 영업사원이 없었는데도 인연을 맺은 이들이 소개에 소개를 이어갔다. 사무실도 규모가 큰 편에 들어가다 보니 당연히 경쟁하고 시기하고 밀어내려는 변호사들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도 삶의 배움을 얻었던 것 같다.
Q. 들은 소문 중 하나가, 갑부집 아들내미라는 것이다.
울산에 처음 왔을 때 빚만 3억이었다. 그때 12만 원짜리였나 14만 원짜리였나 기억도 안 나는데, 무거동 고시원 방 하나 구해서 시작했었다.
Q. 이런 말도 있다. 저 친구가 초선의원인 주제에 돋보이려고 저 쇼를 한다는. 온라인에도 오프라인에도 있다.
난 가만히 있으면 되는 지역구다. 되레 움직이면 다 잃는 곳이다. 처음 국회 들어갔을 때 동료들이 많이 부러워했다. 3선은 따놓은 안정적인 지역구라고. 그걸로 대접해 주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움직여버리면 그 자체로 위협이 되는 거다. 오늘 오전만 해도 우리 당 당협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의원들이 나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카르텔을 깨려고 달려들어 벌인 일인데, 내 이익만을 생각한 것이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Q. 모든 국민이 궁금해할 사항인 것 같은데. 탄핵 시계는 어떻게 돌아가나?
당연히 100퍼센트 탄핵은 된다. 모르는 국민, 모르는 정치인 없다. 문제는 이 탄핵이란 정국을 빠르고 정확하게 마무리 지어서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로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양당 모두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까에만 빠져 있다.
우리 당 몇몇 의원들은 윤석열 시체팔이로 시작했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시체팔이에 들어가는 거다. 강성 지지층을 자기편으로 끌어모으려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당리당략에다 사리사욕이다. 윤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걸 알지만 최대한 활용하려고 놓질 않고 있는 거다.
우리 당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윤석열 시체팔이하며 강성 지지층을 끌어모아 줄 극우만 바라보고 있고, 민주당은 이 탄핵 정국을 다음 대선까지 끌고 가서 무조건 유리하게 사용할 전략 수싸움만 한다. 탄핵 정국을 빨리 마무리한 뒤 국가와 국민 안정을 도모하고 민생을 살려야겠다는 고민이 없다. 이게 너무 잘못됐다는 거다.
탄핵 얘기에서 멀리 갔는데, 탄핵은 정해졌다. 형사 처벌도 정해졌다. 다만 내가 내란 특검법이 여야 합의로 필요하다고 얘기한 것은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 갈등을 또 서로 이용하겠지. 정치가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데 되레 갈등을 조장해 정치적 이해를 얻으려 한다면 그건 나쁜 정치다. 우리나라 정치가 일부러 갈등을 만들어서 이용해 먹으려고만 한다. 양쪽 다 그렇다. 양쪽에서 다 욕먹겠지만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지.
Q. 그럼 대선 시계는 대략 몇 시쯤 머무를까?
탄핵 이후에 바로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지 않겠나. 6월은 지나가야 하지 않겠나.
Q. 민주당 남구갑 지역위원장이 전은수다. 다음번에 또 붙을 텐데 이길 자신 있나?
전은수 위원장은 내가 변호사 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참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다.
종종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길게 보고 정치하라고. 그런데 길게 보면 이에 빠져 옳고 그름을 무시하게 된다. 자기 이득이 되는 데 빠져서 틀린 것을 선택하고 줄서기를 한다. 난 하루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고, 소신껏 국가와 국민을 봉사하고 받들 거다. 그 시간이 쌓여서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감사할 일이다.
지난 선거 때 공약 1번이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와 마타도어를 하지 않는 것이었고, 2번이 날 공격하더라도 고소·고발 안 한다는 거였다. 전은수 변호사는 참 능력 있고 장래가 촉망되며 강한 울산의 미래라고 생각한다. 다치지 않고 잘 성장하면 좋겠다.
서로 비난하는 정치, 내가 상대를 비난해서 반사이익으로 뭘 하려는 것,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잘못하더라도 감싸주고 싶고, 그보다는 그 시간에 내가 더 잘하고 싶다. 서로 잘하기로 경쟁해야 국민도 뽑는 재미가 있지 않겠나.
Q. 울산 남구갑 지역 공약 가운데 지난 7개월 동안 돌아볼 시간이 있었나?
내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했더라. 작년에 특별교부세를 총 37억 원 받았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울산에서 특별교부세를 가장 적게 받는 지역 중 하나였는데 작년에는 6개 지역구 중에 우리가 제일 많이 받았다.
그리고 공약했던 것들을 거의 다 끝냈다. 제복 공무원 처우 개선 관련 5개 법안 모두 통과됐고, 소방안전교부세 확보 통과됐고, 신정1동 뉴빌리지사업이 선정됐다. 삼호동 고도 제한도 풀었다. 대표 발의한 법안이 스무 개 정도 되고, 공동 발의한 게 200개 정도 된다.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했잖나. 거기에도 참여했다. 자랑이라면, 나는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한다. 7개월이지만 공약한 것은 얼추 다 한 것 같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싫어할 것 같은데, 이재명 대표 1호 법안이었던 25만 원 기본소득, 나는 그 법안에 반대한다. 7시간 반 필리버스터를 진행했고, 반대 논리를 개발·정리하고 관철해서 이 법을 저지했다. 이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걸로 안다. 포퓰리즘과 극우, 이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기준에서 민주당이 낸 그 법안은 첫째, 헌법에 맞지 않았고 위헌 성격이 많았다. 둘째, 효율성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았다. 셋째, 부작용이 너무 많다. 재원은 13조나 투입되는데 1회성이다. 내 반대 논리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는 민주당원들이 있었고, 마음이 바뀌는 이들도 많았다.
이제 문수로 우회도로 정도 남아 있는데, 이제 새로운 테마를 찾아야지. 찾다 보면 할 거 많다. 계속 찾아서 계속할 거다.
Q. 의원직을 수행하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어느 한 분야에 함몰되고 싶지 않다. 기회 닿는 대로 배우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정치적 목표는 개헌으로 대통령 분권제와 중임제, 소선거구제 폐지 및 중선거구제 도입이다. 이를 통해서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 건강한 녹색당과 건강한 AI당, 진보당, 노동당 등 모든 당이 가치 지향의 정책 경쟁을 할 수 있는 정치 토양을 만들고 싶다.
Q. 문자 메시지가 계속 온다.
아유, 끝도 없다. 하루에 5천 통씩 온다.
Q. 협박 문자를 보내는 부류는 어떤 사람들일까?
다양하다. 지인들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좌표 찍어서 보내는 이들이 많다. 양쪽 모두에게 받아서 더 많은 것 같다. 진보 진영에서도 좌표를 찍고 극우에서도 좌표를 찍고. 자세히 읽지는 않는데, 육두문자들이 많다.
Q. 양쪽에서 보내는 내용에는 결이 다를 것 같다. 어떻게 다를까?
극우에서는 빨갱이 죽이겠다고. 극좌인지 진보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쪽에선 사람 속이지 말아라, 대머리야, 뭐 이런 것도 있고. 양쪽에서 다 욕을 먹는다.
Q. 대머리야?
머리에 숱이 별로 없다.
Q. 마음에 별로 자극은 없나?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므로 감내하면 된다. 계엄 해제하기 위해 뛰어갈 때 마음을 다졌던 것, 내가 다치더라도 내 역할을 다하고 목소리를 내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신조로 하고 있으니까.
Q. 마지막으로 울산저널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울산은 정말 역동적인 도시이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모든 성취를 이룬 곳임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들도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 울산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기획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건강한 정치 토양이 만들어져야 한다. 진영논리에 빠지면 맹목적으로 된다. 우리 편이면 맞고 적이면 틀렸다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마음으로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판단해 주길 바란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 울산이 새로운 도약으로 대한민국 중심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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