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아 가격 급등에 초코류 과자 가격 인상
호텔업계 수십만원 초콜릿케이크 등 고급화
유통가 고물가에 실속형 초콜릿 수요 공략
“향후 초콜릿 제품 가격 추가 인상 불가피”
‘金초콜릿’ 시대 밸런타인데이도 양극화
연인과 사귄 지 100일 차를 맞이하는 김성결(36세)씨.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특별한 기념일을 준비하기 위해 유명 호텔 파티시에가 만든 고가의 초콜릿케이크를 미리 예약 주문했다.
김씨는 “커플 데이트 겸 밸런타인데이도 챙길 겸 호텔 케이크를 미리 주문했다”면서 “맛이 더 고급스러울 것 같아서 기대된다. 특별한 추억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매년 밸런타인데이마다 동료들에게 ‘의리 초콜릿’을 나눠주는 박미선(34세)씨는 올해 선물 개수를 줄이기로 했다. 초콜릿 가격이 예년보다 올랐기 때문이다.
박씨는 “예전엔 판 초콜릿부터 낱개 초콜릿까지 여러 종류를 섞어 개별 포장해서 줬는데 올해는 2+1이나 할인되는 품목에서 고를 예정”이라고 했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 회사 동료 간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인 밸런타인데이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초콜릿의 주원료인 코코아(카카오 열매를 가공한 것) 값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식품제과업계는 초콜릿이 들어간 제품 가격을 줄인상하고 나섰고, 호텔업계에선 10만원이 넘는 초콜릿케이크를 내세우며 고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유통업계는 할인 행사나 1+1 프로모션 등 고물가 상황 속 가성비를 고려한 실속형 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이상기후에 코코아 생산량↓…가격 상승 지속될 듯
11일 미국 뉴욕 국제상업거래소(ICE)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기준 코코아 선물가격은 톤(t)당 1만113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92.9% 높은 수준이다.
코코아 선물가격은 지난해 12월18일 1만2565달러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1만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톤당 2000달러대였던 가격이 무려 5~6배 수준으로 오른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코코아 가격 상승률이 178%로, 같은 기간 122% 급등한 비트코인보다 더 높다고 전했다.
코코아 가격이 급등한 것은 원산지인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등에서 기후 위기와 병충해의 영향으로 카카오 열매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식품수출정보 자료에 따르면, 2023~2024년 세계 코코아 생산량은 450만톤으로 직전 2개년 대비 10.9% 감소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코코아 인도량은 각각 20%, 35% 쪼그라들었다.
계속되는 기후 위기와 고환율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코코아 가격 상승은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코아 가격 급등에…초코류 과자 가격 인상·고급화 전략도
코코아 공급 불안이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내 식품제과업체들은 일제히 가격 인상 대열에 합류했다.
롯데웰푸드는 17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9.5% 인상하기로 했다. 가나마일드(70g)를 기존 2800원에서 3400원으로, 크런키(34g)를 1400원에서 1700원으로, 초코 빼빼로(54g)를 18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린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가격 인상 이유에 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코코아를 비롯해 유지, 원유 등 각종 원재료비와 물류비, 인건비, 전기료 등 가공비가 지속 상승함에 따라 원가 부담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해태제과는 초콜릿 원료 비중이 큰 홈런볼과 포키 등 10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8.6% 인상했다. 오리온 역시 초코송이, 비쵸비 등 초콜릿 과자 가격을 최대 20% 올렸다.
이달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는 일부 케이크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중량은 최대 30%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단행했다.
특히 비싼 케이크를 판매하는 호텔업계를 중심으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조선호텔의 경우 7만5000원에서 10만원대 케이크부터 2만원대 초콜릿 등 고가의 제품을 준비했다.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는 8만8000원짜리 밸런타인데이 시그니처 케이크를 내놨고, 더 플라자는 1개에 9000원에 육박하는 초콜릿 볼 4구 패키지를 판매 중이다.
고물가에 실속형 초콜릿 수요도…밸런타인데이 양극화
유통업계는 오히려 가성비를 앞세우고 있다. 다양한 기획 상품을 대폭 할인하거나 추가로 더 얹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얇아진 지갑의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이마트는 오는 14일까지 밸런타인데이 관련 상품을 최대 30% 할인한다. 롯데마트는 12일까지 ‘매일 페레로 로쉐 컬렉션 T24’를 행사 카드로 결제 시 1+1으로 한정 판매한다.
GS25는 젤리 브랜드 ‘하리보’,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등의 밸런타인 기획세트 41종을 오는 13일까지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로 결제 시 40% 페이백을 적용한다. CU는 CU Npay카드로 차별화 상품과 페레로 로쉐 기획 상품을 2개 이상 구매하면 최대 60% 할인해준다.
이마트24는 단품 초콜릿 전 상품을 대상으로 오는 14일까지 ‘다다익선 반값 쿠폰팩’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 상품을 현대카드로 결제 시 금액 구간에 따라 최대 1만5000원권의 쿠폰을 제공한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실속 있는 밸런타인데이 상품과 행사를 구성했다”면서 “1만원 이상 구매 시 5000원 쿠폰을 받을 수 있는데 따져보면 사실상 반값으로 초콜릿을 살 수 있어 이익인 셈”이라고 말했다.
업계가 주요 특수 대목으로 꼽히는 밸런타인데이 마케팅 경쟁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고물가 시대를 맞아 초콜릿 소비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환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관세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물가가 불안정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고소득층은 그들만의 프리미엄 소비를 하겠지만 하위층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은 초저가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