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설이 어때서요!

2025-01-2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라고 말한다. 한 번은 각별한 생각으로 축하를 주고받는 자기의 생일이라는 날이고 다른 하나는 새해의 탄생이란다. 이날을 기점으로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셈해보고 남은 날을 헤아리기에 이날이 우리 인류 공동의 생일이란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설이 두 번이 있다. 양력으로 1월 1일 새해가 그것이요, 음력으로 1월 1일 설날이 그것이다. 양력의 설은 (요즘엔 그냥 새해 첫날이라고만 부르고 설은 음력에만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글자 그대로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365일 만에 맞는 새날이요, 음력으로 맞는 설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해서 마음으로 맞는 새해다.

우리는 이미 한 달 전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덕담했지만, 다시 음력의 설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을 나눈다. 어릴 때는 뭐 새해를 두 번이나 맞고 인사를 두 번이나 올리냐고 쑥스러워했지만, 양력 1월 1일을 하루만 쉬게 하고 음력설을 앞뒤 사흘쯤 쉬게 하니 음력으로 맞는 1월 1일이 진정으로 새해의 기쁨을 가정과 이웃 친지들과 함께 나는 명절이자 잔치 날이 되고, 그러다 보니 새해 덕담을 두 번 하면 더 좋은 일 아니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가 무슨 띠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음력으로 계산하는 것이라면 이제 설에 나도 다시 뱀의 해를 맞는다. 무려 72년 전 뱀의 해에 태어났으니, 나야말로 진정한 나의 해를 또 한 번 맞는 셈이다. 물론 12년 전에 가장 중요한 60이라는 주기를 맞아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본 때가 있었지만 이제 다시 나의 해를 잘 맞기 위해서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반추해 볼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섣달그믐에

마당을 깨끗이 쓸고 그 쓰레기를 이용하여 마당 한구석에 모닥불을 피움으로써 모든 잡귀를 불사르는 풍속이 있었다는데, 아파트 생활에 마당은 없지만, 마음속에 남은 지난해의 쓰레기들을 모아 그것을 뒤척여보며 마음 정리를 하는 것이다.

올해 설을 맞으면서 문득 나는 내가 그동안 지식을 쌓고 교양을 갈고닦아 지식을 무기로 삼아 제법 근사한 인간으로 살아온 것 같은데 그것이 거짓된 포장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70이 넘으면 옛날 사람들은 제칠질(第七秩)을 넘어 제팔질(第八秩)로 접어든다고 하는데, 정말로 8자를 눈앞에 떠올려보니까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 들고 덜컥 이번에 맞는 설이 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장유(張維, 1587∼1638) 선생처럼 길거리에 나가서 아이들이 파는 '바보'를 사주고 나의 '지혜'를 그들에게 주어버리고 싶다.

거리에서 소년들 외치고 다니면서

팔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고 한다.

무엇을 팔려느냐 물어보니까

끈덕지게 붙어 다니는 바보를 팔겠단다.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사련다.

값도 당장에 너에게 치러주지.

인생살이 지혜는 필요치 않아

지혜란 원래 근심만 안기는걸

온갖 걱정으로 내 안의 평화 깨뜨리고

별의별 재주로 책략을 꾸미지

예로부터 꾀주머니 소문난 이들

처세가 어찌 그리 궁박했던가?

환하게 빛나는 기름 등불 보게나

자신을 태워서 없애지 않나 (가운데 줄임)

그러니 지혜란 없는 게 낫고

바보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로세

너에게서 바보를 사 오는 대신

나의 교활한 꾀 건네주리라.

눈 밝지 않아도 볼 것은 다 보이고

귀 밝지 않아도 들을 것은 다 듣나니

아 이제 새해는 크게 복되겠다.

점쳐 볼 필요도 없는 일이지.

... 장유, <바보를 파는 아이(賣癡獃)> / 오언 고시(五言古詩) ​

올해 운세라는 것을 보니 70이 넘은 뱀띠는 건강을 조심하란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즐겁게 살라고 한다. 장유 선생이 말한 바보를 사고 지혜를 남 주라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이다. 뭐 필자야 그렇다 하더라도 후배들이나 가족 자손들에게는 새해는 또 다른 시작이고 늘 새로운 포부와 희망을 품고 덤벼야 할 축복의 시간이다.

올해는 뱀의 해. 뱀에게는 재물 운이 많이 따른다고 하는데 다들 성급하지 말고 차분하게 땅을 디디고 다니며 재물을 불려 좋은 결과를 얻을 때인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에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오고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해지면 좋겠다. 다만 눈앞의 이익을 좇으며 아등바등하는 것은 올해는 맞지 않을 것 같으니 늘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행동이나 행보를 조심하며 차분히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양력으로는 벌써 한 달가량이 지난 것이니 양력 새해를 맞으며 계획했던 결심이 벌써 흔들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볼 때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들은 거창한 각오로 뭔가 큰 것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하지만 매번 중단한 경험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아주 작은 결심이나마 그것을 뜻으로 세워 꾸준히 추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일 년이란 시간이 긴 것 같지만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그러니 앞으로 남은 날들을 허투루 버리지 말고 소중하게 쓰는 것으로 다시 마음을 곧추세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바르게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올 연말에 우리는 지난 연말보다 한참 멀리 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매번 새해를 맞이하는 절차를 치르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찰스 램은 그의 수필 <제야(除夜)>에서 ​

"나는 내가 지금 이르러 있는 나이에 그대로 머물고 싶다. 나도 내 친구들도 더 젊어지지 않고, 더 부유해지지도 않고, 더 수려해지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이로 인해 이 세상과 끊어지거나 사람들이 말하듯 익은 과일처럼 무덤 속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

한 살을 더 먹기가 두렵다는 뜻이고 시간이 아깝다는 뜻이리라. 나이 든 사람들 가운데 그런 소망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만은 무정한 시간은 그런 소망을 고려하지 않고 냉정하게 흐른다.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으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들은 제야의 종소리, 무정하게 가고 있는 2025년이란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자산이자 성과로 만들어내는 것은 개인 각자에게 달린 것이리라.

지혜를 버리고 바보로 채우는 것은 나 같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 맡기고, 세상의 지혜를 받아 자기 것으로 하며 이 한 해를 알차게 살아갈 일이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두 개의 설을 준 것은 그처럼 일단 양력설에 세운 계획이 제대로 추진될 것인지를 음력설에 점검하고 방향을 올바르게 잡아 추진하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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