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잘 노는 것이 경쟁력이다

2024-09-29

나이가 들며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모르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떻게 노는지 모르는 것이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과 같이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유의미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뒷받침했던 감정들은 유희였다고 생각한다.

근대적 압축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노는 것, 유희라는 말은 비생산적이며, 아직은 가져서는 안 될 사치스러운 감정이라 여긴 시간들은 분명 존재하였다. 결과론적 관점에서 유형이 아닌 무형의 존재 그 가치에 힘을 실어줄 기회는 비교적 빈약하였다는 것 또한 사실이며, 이 때문에 고도성장의 그림자에 가려진 우리의 오늘이 아닐까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였던 후이징가(Johan Huizinga)가 인간의 문화는 유희 속에서, 유희로서 발생하고 전개되었고, 유희는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말이다.

재미가 있어야 무엇이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는 지론을 가진, 한 선배는 나이가 들수록 혼자 노는 법을 잘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열심히 살다가 직장이나 조직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때 갑자기 늘어난 시간의 부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때론 길을 잃는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 앞에서 우리는 마냥 자유를 느끼며 즐길 수만은 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그 가치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온종일 오가는 사람들만 바라보는 이에게 자유라는 부러움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참맛을 음미한다는 말처럼, 노후에 양질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노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미리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의 유희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모르는 부러움은 결국 자존감의 상실이라는 종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즉 다시 말해 자신에게 맞는 유희 탐색의 시간과 예행연습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에 우선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여러 가지 선제적 경험이 필요하다. 야외활동을 하는 아웃도어 스포츠도 좋고, 조용히 책을 읽는 독서도 좋다. 그 무엇이라도 당신의 심장이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사회과학을 전공한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왕이면 놀이하면서 성장도 함께할 수 있는 가성비 있는 시간이라면 어떨지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성공법이라는 책, 얇지 않은 두께지만 이 책에서 강조되는 부분은 계속 되풀이된다. 즉 멈추고 생각하고 창조하라는 것이다. 고리타분한 명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멈추라는 말은 나아가려는 길, 이미 탄력을 받은 가속도에 방해가 되는 성질이라 해석하여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멈춤의 가치를 재조명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경우는 그 실수에 대해 멈추어 생각하고, 반성하고, 복기(復棋)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만의 특권이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후회하는 사람은 오로지 속도에만 치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눈앞에 있는 급급한 일에 대해서만 처리하기에 멈출 생각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노는 방법으로 나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빌리고자 한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내가 즐거워할 시간을 찾아보자. 어떤 이는 이 또한 일거리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부터가 유희의 시작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아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멈추고 생각해야 한다.

멈추어도 아직 모르겠다는 이가 있다면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어떤 일을 했을 때 미소가 끊이지 않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꼈을 때, 그것이 바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인 공산이 크다.

그 일은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스한 밥을 지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 아이에게 손수건 한 장을 건네는 일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이런 일들에 기쁨을 느끼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어떨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것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쁨도 유희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던 일을 멈추고 때로는 새로운 일에서 느껴질 재미, 그 속에서 보람과 의미까지 느낄 수 있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가성비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재미있게 노는 법, 그 진실한 의미는 20대 촉각적인 놀이문화에 다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중년과 노년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는 시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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