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진, 동화작가

‘잘 가고 있는가? 동서. 당신이 잘 알지 않는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는 걸. 인간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섭리가 있다면 오직 하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네. 조금 일찍 간다고 아쉬워하지 말게. 머지않은 날 우리 다시 만나게 될걸세. 동서와의 좋은 추억과 고마움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그때까지 간직하겠네. 그럼 안녕!’
동서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온 날 저녁이었으리라. 그와 마지막 대화를 하고 싶었음이런가? 모바일 메신저를 열어 문자를 찍어놓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삭제했다. 이 또한 부질없고 헛된 일이다 싶어 날려 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뜨락으로 나갔다. 불잉걸을 쏟아붓는 듯한 한낮 열기가 아직도 뜨락에 가득하다. 살아있기에 느껴지는 열기라고 별들이 속삭이는 듯하다. 별이 총총한 이 밤에 내 삶과 인생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밤이 깊도록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난 가끔 제주의 산야(山野)를 혼자 걷는 습관이 있다. 제주 산야에는 어디를 가든 죽은 자들의 집 울타리를 보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죽은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무덤에 돌을 둘러 쌓은 나라는 없을 것 같다. 죽은 영혼들의 거주처임을 알리는 정성을 제주인들은 먼저 깨달은 것일까? 그래서 오로지 제주에만 존재하는 장례문화이기에 '산담'을 세계 장례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여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산 자들을 위한 위안의 울타리일 뿐 이건 영혼을 자연으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다.
영혼이 구천지하(九泉地下)에 도달하려면 먼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도리천(忉利天)에 오르지 못하고 이승을 헤매게 하는 건 진정 영혼들을 위한 일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유골함에 담겨 봉안당에 안치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것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이 일정 장소에서 유족들을 기다리며 이승에 대기하는 형국이 아닌가? 유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영혼들이 가엾게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양지공원이 윤유월에 개장 유골 화장 예약을 하루 80구(具)로 확대한다는 소식이다. 조상님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점차 우리의 관습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 영혼들을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픈 마음들이 모이고 쌓여 봉안당 추모의 집에 모셔둔 화장 유골들도 얼른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개장 유골 화장 건수가 매해 증가하고 있다는 건 장례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동서의 부고가 날아든 건 지난달 문학협회 회의가 있던 그 시간이었으리라. 평소 지병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잠을 자듯 세상을 떠나 별숲공원 한 줌 흙과 섞인 채 자연으로 돌아갔다.
살아간다는 건 한갓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은 아닐까? 내 인생 내 삶도 어디쯤에서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갈지는 몰라도 일상을 평온으로 채워가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
이 밤 자연으로 돌아간 동서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