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헌치백

2024-07-05

중증 장애 당사자가 쓴 자전소설이다. 저자인 이치카와 샤오는 한국 독자들에게 큭큭큭 웃어주시기를 요청했고, 실제로 소설의 분위기는 십대들의 수다처럼 발랄하다. 그 발랄함이 5평 침대에 누운 채 기계장치에 의존해 생활해야 하는 중증 장애 여성의 일상을 가리지는 않는다.

장애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은 드물다. <헌치백>이 세상에 나온 후에야 일본 사회는 그걸 알아차렸다고 저자는 전한다. <헌치백>은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는데, 소설의 주인공 샤키는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차별적인 사회문화를 독설과 풍자로 고발한다. 사회보장제도, 낙태 운동, 출판문화에도 장애 차별적인 요소가 내재하고 있었고 샤키가 그걸 찾아낼 때마다 독자들은 기꺼이 공감할 것이다.

어떤 한 사람에게 불편한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문제일 수 있다. 저자는 주인공의 몸과 움직임을 묘사할 때, 독자들이 장애와 비장애, 우월과 열등으로 나눌 수 없게 쓴다. 그냥 나와 다른 몸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독자들이 소설을 끝까지 읽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불편하니까.

중증 장애 여성인 샤키는 라이팅 알바를 시작한다. 구글, 야후, 네이버 기사의 조회 수를 높여주는 정보 짜깁기 기사를 쓰는 일인데, 수입이 생기면 전액 가출 소녀, 혹은 어린이 쉼터, 푸드뱅크에 기부한다. 그리고 다음의 문장을 쓴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해 부모님이 평생 노력해 재산을 남겨주었는데 자식이 후계자 없이 죽어서 모조리 국고로 들어간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생산성 없는 장애인들에게 사회보장을 빨아 먹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분들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조금쯤 체증이 내려가지 않을까?”

어느 날 샤키는 온라인 창에 “평범한 여자 사람처럼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해 보는 게 나의 꿈입니다”라는 트윗을 남긴다. 그리고 장애인을 낳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성단체와 살해당할 수 없다는 장애인 단체의 대립과 갈등의 시대가 있었다고 슬쩍 말한다. 리프로덕티브 라이츠(임신, 피임, 출산의 문제를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나 여성인권운동가인 요네즈 도모코를 소환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강한 연대 또한 있었다고 강조한다.

샤키는 출판계의 마치스모(마초에서 유래)도 지적한다.

“일본 사회는 책 때문에 고통받는 꼽추 괴물의 모습 따위, 일본의 비장애인은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종이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서서히 등뼈가 찌부러지는 것만 같은데도,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 좋다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길지 않은 작품인데, 주석이 많이 달렸고, 주석을 읽지 않으면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아직 장애와 관련해서 이해하지 못한 게 많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작품을 읽게 되어 반가웠다.

오영애 울산환경과학교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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