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사랑꾼이 펴낸 《푸른배달말집》 책잔치 열려

2024-10-0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김민기 ‘늘푸른나무(상록수)’ 가운데-

기쁨수레와 서로믿음님이 부르는 노랫말을 들으며, 나는 책 잔치가 열리는 대강당 구석에 앉아 눈시울을 붉혔다. 김민기의 노랫말처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잔치 내내 《푸른배달말집》을 만드느라 “멀고 험한 길을 뚫고 나온 한실 님”의 집념에 옷깃을 여몄다.

어제(3일) 낮 2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아주 뜻깊은 책 잔치가 열렸다. 이날 책 잔치상에 오른 책 이름은 《푸른배달말집》(한실, 안그라픽스)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배달말, 말집 같은 말에서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말 국어사전’이지만 그러나 그간 나온 우리말 사전과는 크게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그 이야기를 《푸른배달말집》을 쓴 최한실(아래, 한실) 님에게 들어보자.

“《푸른배달말집》에는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 실었고, 글말에 물들지 않은 우리말 입말 보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말을 살려 쓰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푸른배달말집》에서 찾아 우리말로 바꿔 써가면 됩니다. 우리 몸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지만, 우리 얼은 우리말에서 물려받습니다.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살려내는 일은 우리 겨레를 살리고 나라를 밑바탕에서 튼튼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한글 왜말을 쓰고 산다는 것은 생각을 왜말로 하고, 꿈도 왜말로 꾼다는 뜻이니 우리얼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제 왜말살이에서 벗어나 겨레말살이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은이 한실 님은 “오늘날 우리가 배곳(학교)에서 배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일본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낱말이 모자라서 말을 넉넉하게 하려고 들여다 쓴다면 다른 나라 말이라도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그런데 일본말에서 온 말은 멀쩡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 말들입니다. 이런 말을 한글 왜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쓰는 말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뿌리 뽑고자 하는 뜻에서 이 말집(사전)을 만든 것이다.

이날 책 잔치 여는 말(축사)은 정토회 법륜 스님이 했다. 법륜 스님은 “우리 겨레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한자말을 배워야 했고, 서양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시 영어를 배워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말(배달말,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쳤다. 그런 까닭에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한자말을 나날살이에서 쓰게 되다 보니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을 쓰고자 하는 노력을 그쳐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들꽃 주중식 님이 《푸른배달말집》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눈으로는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10여 년 앞 ‘겨레말 살리는 이들’ 모임을 떠올렸다. 한실 님의 《푸른배달말집》은 ‘겨레말 살리는 이들’과 뜻을 모아 그때부터 꾸준히 쉬지 않고 배달말을 갈고 다듬어 오늘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어요. 푸른누리엔 벌써 서리가 내렸고요. 호박잎이랑 고구마잎은 데쳐놓은 꼴이 됐어요. 몇 가지 여쭤보고 싶어 글월 드립니다. '안전하다', '위험하다', '영향을 끼(미)치다' '덕(분)', '공덕'을 갈음할 알맞은 겨레말이 있을까요? 외솔 님은 영향을 '끼침'이라고 바꿔놓으셨는데 영향을 끼(미)치다 까지 말하려면 잘 안되어요. '방', '문', '병'과 '약', '죄'와 '벌'을 뜻하는 겨레말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많은 말들처럼 한자말에 밀려 사라져 갔을까요? 좋은 가르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14.10.17. 한실 님이 보낸 번개글(이메일)

내가 한실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5월의 일이다. 한실 님은 그 무렵,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기와 고장 삶꽃(지역 문화) 살림이로 삶을 바친 김수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 데 빗방울 님은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어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고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풀이한 책을 짓는 것’을 큰 과녁으로 골잘 최인호, 날개 안상수, 들꽃 주중식, 마주 박문희, 한꽃 이윤옥, 한실 최석진과 함께 우리말 ‘세움이’가 되어 “배달말집”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들은 낱말 하나라도 모으기 위해 번개글로 서로의 뜻을 나누고, 그리고 많은 모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함께 하는 이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말집 만들기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대로만 가면 곧 말집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부푼 꿈도 꿨다. 그러나 2018년 6월, 겨레말 살리는 이들을 이끌던 빗방울 김수업 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우리의 일은 잠시 멈춰서야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 때에 선장이 숨을 거둔 격이었다.

지은이 한실은 말한다. “이 말집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구슬 같고 깨알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나게 된다.”라고 말이다. 구슬을 함께 꿴 이들은 나무 님, 높나무 님, 별밭 님, 아침고요 님, 살구 님, 고르 님, 달개비 님, 아무별 님, 보배 님, 아라 님, 쑥부쟁이 님, 소나무 님, 시냇물 님, 숲길 님, 숲노래 님, 채움 님, 미르 님, 윤슬 님, 미리내 님이 그들이다.

그렇게 해서 어제 《푸른배달말집》은 책 잔치상에 올랐다. 처음 뜻을 세운 지 11해 만에 거둔 값진 열매다. 대강당을 가득 메운 이들은 1,560쪽의 말집이 누리에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힘찬 손뼉을 쳤다. 그리고 모두의 일처럼 기뻐했다.

축하말을 해준 이기상(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는 “나는 한뉘(평생)토록 삶갈(철학)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일찍이 ‘우리 생각(사상)’ ‘우리 삶갈(철학)’을 알아보고 간추려 누리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우리말 삶갈말집(철학사전)’을 펴냈고, 여러 뜻맞는 이들과 함께 ‘우리말로 갈(학문)하기 모임’을 꾸려 왔다. ‘우리말로 갈하기’ 모임에 빗방울 김수업 교수님이 계셨는데, 문학을 우리말로 ‘말꽃’이라 이름 짓고, 한뉘토록 파고든 열매를 《배달말꽃-갈래와 속살》에 담아 내놓았던 적이 있다. 아마도 ‘우리말로 갈하기’에 가장 걸맞은, 오롯한 열매라고 여긴다.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최한실 님이 이룩한 일이 바로 빗방울 님이 이룩한 《배달말꽃》의 뒤를 잇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배달말집’을 만들기 위해 빗방울 님이 세움이 7명을 만들면서 기자를 넣어 준 것은 아마도 일본어 전공자이기 때문인 듯하다. 올해로 일본어 입문 45해를 맞이하는 기자는 아이우에오를 익힐 때부터 우리말이 일본어를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는 사실에 된불(충격)을 받은 뒤부터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골라낸답시고 이런저런 책을 냈지만, 한실 님의 이번 《푸른배달말집》 앞에서는 그저 고개가 수그러든다. 처음 세움이로 함께 했지만, 빗방울 님이 돌아가신 뒤로 함께하지 못하는 동안, 그 첫 뜻을 이루려고 낮밤을 새우면서 낱말들과 씨름한 한실 님의 거룩한 발걸음에 큰절을 올린다.

이 책 《푸른배달말집》에 관련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은이 최한실 님과 대담을 가진 뒤 기사로 다시 올리려고 한다.

《푸른배달말집》, 한실, 안그라픽스 펴냄, 2024.10. 책값 8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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