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와 ‘슈뢰딩거의 축의금’

2025-10-29

믿기 힘든 “딸 결혼식 신경 못 썼다”

돈 돌려준다고 문제 해결된 것 아냐

조사 전까진 뇌물과 축의금의 중첩

인류의 인지 구조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고전역학에 익숙하게끔 진화했다. 그래서 관측 전 입자의 상태는 중첩(여러 상태로 동시에 존재)돼 있고, 어떤 상태로 측정될지는 오직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적(indeterministic) 해석은 사람의 직관과 심하게 충돌한다. 오죽했으면 아인슈타인조차 양자역학을 끝내 수용하지 못해 인생 후반부 수십 년을 물리학계의 ‘위대한 비주류’로 떠돌았을 정도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니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의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고 한 게 완전히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사학과 출신인 65세의 최 위원장이 양자역학 서적을 독파하기가 쉽지 않았을 건 분명하다. 다만 그렇다고 딸 결혼식까지 못 챙겼다는 말은 양자역학 자체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다. 문제의 결혼식은 지난 18일 국회 사랑재에서 최 위원장이 혼주로서 한복을 차려입고 하객들을 맞이한 인륜지대사였다.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모친이 딸 결혼식을 신경 안 썼다고?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나.

야당이 결혼식을 문제 삼은 이유는 최 위원장이 지위를 이용해 엄청난 축의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일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6일 언론 카메라에 찍힌 최 위원장의 텔레그램 화면에는 대기업ㆍ방송사 등 피감기관 이름 옆에 ‘100만원’ ‘20만원’ ‘50만원’ ‘30만원’ ‘총 930만원’ 등 액수를 적은 메시지가 띄워져 있었다. 최 위원장은 누군가에게 ‘900만원은 입금 완료, 30만원은 김 실장께 전달함’이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논란이 일자 최 위원장 측은 “기관 및 기업에서 들어온 축의금을 돌려주도록 보좌진에게 지시하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돌려주면 끝인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공직자가 직무 관련 여부를 불문하고 1회 100만원, 동일인에게 연간 300만원을 초과해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도록 규정한다. 직무 관련이 있으면 100만원 이하라도 과태료나 징계 대상이다. 경조사의 경우엔 5만원(화환 포함 10만원)까지 허용한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공직자가 김영란법 한도를 넘는 축의금을 받았다고 크게 탓하긴 어렵다고 본다. 요즘 물가를 고려하면 김영란법의 한도 규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과방위원장과 갑을 관계인 기업 측으로부터 몇백만원의 축의금을 받는 건 위법의 소지가 충분하다. 심지어 대가성 있는 뇌물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뇌물이라면 나중에 돌려줘도 법적 문제가 생긴다.

최 위원장이 문제가 될 축의금을 다 돌려줬는지도 알 수 없다. 김재섭 개혁신당 의원은 “최민희가 받은 축의금은 ‘슈뢰딩거의 축의금’이라 축의금 상자를 낱낱이 까봐야 그게 뇌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깔끔하게 수사받자”고 주장했다. 최 위원장의 축의금을 양자역학에서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 빗댄 것이다. 독가스가 발생할 확률이 있는 상자 속에 놓인 고양이는 열어보기 전까진 산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한 상태라는 역설이다. 절묘하게 최 위원장 딸 축의금 함에 들어간 돈의 성격에 들어맞는다. 사법 당국이 조사해보기 전까진 뇌물과 단순 축의금이 중첩된 상태다.

그러게 애초에 결혼식을 공개리에 진행한 게 화근이었다. 고위 공직자의 경조사가 알려지면 관련 업계에서 거액의 부조금을 싸 들고 오는 게 오랜 관행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부조금이 몇억원대에 이르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최 위원장도 감투 쓴 김에 ‘축의금 테크’를 하다 사고가 난 듯하다. 만에 하나 거액의 축의금을 예상 못 하고 국감 때 국회에서 결혼식을 치렀다면 더 큰 문제다. 그런 엉성한 판단력으로 정치하면 국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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