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검색엔진과 운영체제(OS) 공룡인 구글이 텐서처리장치(TPU)를 활용한 ‘제미나이 3.0’을 앞세워 AI 시장을 뒤흔들자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가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오픈AI의 챗GPT 서비스가 지난 3년 간 진두지휘한 AI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까닭이다. 아마존, 엔스로픽 등 다른 미국 기업들과 중국 AI 회사들의 도전도 거센 상황이다. 월가는 이에 더해 오픈AI에 베팅할 목적으로 지난달 엔비디아 주식까지 전량 매도한 소프트뱅크그룹과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 AI 산업이 오픈AI와 이 회사의 대규모 데이터센터로 귀결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에서다. 구글 등 경쟁사와 달리 현금 창출원(캐시카우)이 없어 출자 때마다 늘 ‘순환 거래’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점도 오픈AI의 투자 유치에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오픈AI, 구글 ‘제미나이 3.0’이 뜨자 ‘코드 레드’…3년 만에 입장 정반대로

지난 2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는 1일 직원들에게 메모를 뿌리고 ‘적색 경보(코드 레드)’를 발령한다면서 당분간 챗GPT 품질 개선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서비스 출시는 연기한다고 밝혔다. 올트먼 CEO가 미루겠다고 알린 서비스는 광고, 건강·쇼핑 AI 에이전트, 개인 비서 서비스 ‘펄스’ 등이다. 올트먼 CEO는 그러면서 인력 재배치를 잠정적으로 유도하고, 챗GPT 성능 개선 담당자들과는 매일 회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트먼 CEO가 이렇게 긴장한 자세를 취한 것은 지난달 18일 구글이 공개한 제미나이 3.0의 성능이 예상 외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제미나이 3.0은 추론 능력, 코딩 실력 등 각종 성능 시험에서 챗GPT의 최신 모델인 ‘GPT-5.1’은 물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끄는 스타트업 xAI의 ‘그록’보다도 더 뛰어난 점수를 기록했다.
구글은 나아가 기존 중앙처리장치(CPU), GPU와 달리 범용적인 작업은 수행하지 않고 오직 AI 연산만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한 자체 TPU로 제미나이 3.0을 구동해 오픈AI를 더욱 압박했다. AI 모델과 반도체, 소비자·기업 플랫폼을 내부적으로 모두 수직 계열화한 회사는 전 세계에서 현재 구글뿐이다. 오픈AI는 반도체는 엔비디아에, 플랫폼은 다른 서비스 기업들에 각각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페이스북의 모회사인 메타까지 TPU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그간 시장을 지배한 오픈AI와 엔비디아의 아성은 단번에 흔들렸다. 오픈AI의 라이벌로 꼽히는 AI 챗봇 ‘클로드’의 운영사 앤스로픽은 최근 구글 TPU 100만 개를 탑재한 클라우드 이용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오픈AI는 2022년 11월 30일 챗GPT를 세상에 선보인 이후 최근까지 ‘최고 생성형 AI’라는 지위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던 회사다. 2022년 12월에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거꾸로 챗GPT의 등장에 충격을 받고 사내에 코드 레드를 발령한 바 있다. 피차이 CEO는 당시 챗GPT가 구글이 독과점하던 검색엔진 시장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3년 만에 두 회사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닉 털리 오픈AI 부사장은 2일 X(옛 트위터)에서 “현재 우리의 초점은 챗GPT를 더욱 유능하게 만들고, 성장을 지속시키며, 세상으로의 접근을 확장하는 것”이라며 “더 직관적이고 개인화된 느낌을 주도록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앤스로픽·아마존에 딥시크까지 맹추격…챗GPT 아성 ‘흔들’

챗GPT를 무섭게 추격하는 회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앤스로픽도 최근 자사 AI 모델 가운데 최상위 모델인 ‘오퍼스’의 최신 버전 ‘클로드 오퍼스 4.5’를 선보였다. 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해 앤스로픽은 기업공개(IPO) 준비를 위해 윌슨 손시니 법률사무소를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이 법률 사무소는 2022년부터 앤스로픽과 자문 관계를 맺은 회사다. 구글, 링크트인, 리프트 등 기술기업 IPO에도 관여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앤스로픽은 에어비앤비의 IPO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크리슈나 라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하기도 했다.
FT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아직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내부 점검표를 마련하고 대형 투자은행(IB)들과 잠재적 IPO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오픈AI보다 이른 시기에 주식시장에 입성할 수도 있는 셈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이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기업가치는 각각 5000억 달러(약 730조 원), 3000억 달러(약 440조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생성형 AI 스타트업인 딥시크도 이달 1일 최신 모델인 ‘딥시크 V3.2’와 고연산 특화 모델 ‘딥시크 V3.2-스페치알레’를 공식 출시했다. 딥시크는 딥시크 V3.2가 학습 강화와 연산 능력 확장을 통해 오픈AI의 ‘GPT-5’와 비견되는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딥시크 V3.2-스페치알레는 GPT-5를 능가하고, 구글의 ‘제미나이 3.0 프로’와 비슷한 수준의 추론 능력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제미나이 3.0 프로와 비교해 토큰(단어 또는 문장 기본 단위) 효율성 측면에서는 눈에 띄게 열등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아마존도 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연례 클라우드컴퓨팅 행사에서 자체 AI 칩인 ‘트레이니엄 3’과 함께 자사 AI 모델인 ‘노바’의 새 버전 ‘노바2’, 개별 기업이 자체 AI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바 포지’ 서비스를 각각 공개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트레이니엄 3이 전작인 ‘트레이니엄 2’보다 컴퓨팅 성능은 4배 이상 좋고 에너지 소비량은 40%가량 줄었다고 소개했다. 또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할 때보다 AI 모델 훈련·운영 비용을 최대 5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WS는 트레이니엄 3의 3배 이상의 성능을 보유한 후속작 ‘트레이니엄 4’ 개발에도 이미 착수했다고 알렸다. 맷 가먼 AWS 최고경영자(CEO)는 “트레이니엄 3는 대규모 AI 훈련과 추론 분야에서 업계 최고의 비용 효율성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 “1000억 달러 투자 확정 안돼”…손정의 ‘올인’ 전략도 불안

오픈AI의 아성이 휘청이면서 엔비디아 등 이 기업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려 했던 각 회사들도 조금씩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픈AI가 적어도 2030년 정도까지는 적자만 볼 가능성이 높다 보니 수익성에 대한 월가의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올트먼 CEO 스스로가 ‘거품론’을 띄운 뒤부터는 오픈AI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발표하는 기업마다 순환 거래 의혹에 휩싸이며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오픈AI가 어느새 1990년대 중후반 ‘닷컴버블(인터넷 산업 거품)’의 악몽을 소환하는 주축 기업이 된 분위기다. 순환 거래란 특정 기업이 오픈AI에 자금을 지원하면 오픈AI가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다시 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식으로 구성된 계약을 뜻한다.
2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CFO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린 ‘UBS 글로벌 기술·AI 콘퍼런스’에서 오픈AI와 추진하는 1000억 달러(약 147조 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 계약을 아직 체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엔비디아는 올 9월 22일 오픈AI와 손잡고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10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가 순환 거래 의혹을 집중적으로 받은 바 있다. 크레스 CFO는 오픈AI와 진행하는 계약 내용은 공개된 예약 주문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앤스로픽과 관련한 계약도 숫자에 추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이 소식에 이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80달러 선을 넘어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최근 오픈AI와의 순환 거래 의혹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황 CEO는 엔비디아가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SW) 기업 시놉시스의 지분 2.6%가량을 총 20억 달러(약 2조 94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밝힌 1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투자는 반도체 구매 계약과 연계되지 않았다”고 부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월가의 눈은 오픈AI에 모든 것을 건 손 회장으로 향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손 회장은 1일 도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열린 국제금융회의 ‘퓨처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에서 “AI가 거품이냐고 묻는 사람은 똑똑하지가 않다(not smart enough)”고 비판했다. 손 회장은 “AI로 10년 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 금액으로는 연간 20조 달러(약 2경 9000조 원)를 벌어들인다”며 “10년간 10조 달러를 투자하면 불과 반년 만에 회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소프트뱅크그룹이 올 10월 보유하고 있던 엔비디아 주식을 전량 매각한 것과 관련해서는 “오픈AI 등에 투자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며 “사실은 한 주도 팔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는 10월 58억 달러어치가 넘는 엔비디아 지분 3210만 주를 전부 매각한 바 있다. 5년간 5000억 달러(약 730조 원)를 투자해 미국 전역에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집중할 목적에서다.
투자만 하면 ‘순환 거래’ 거품론…‘닷컴버블 악몽’ 벗을지 주목

손 회장의 대규모 투자에도 월가가 오픈AI를 의심하는 대목은 여전히 재무적 문제다. 구글 등 경쟁사와 현금 창출 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데다 IPO 작업도 미진한 상태인 까닭이다. 심지아 이제는 오픈AI가 투자를 받거나, 단행할 때마다 순환 거래 의혹 꼬리표가 붙는 경지가 됐다. 대규모 투자는 필요하고, 돈은 벌지 못하는 회사 입장에서 다른 방식의 출자는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이달 1일 오픈AI가 스라이브 홀딩스에 지분 투자를 한다고 발표할 때도 월가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순환 거래 구조를 문제 삼았다. 오픈AI는 스라이브 홀딩스 지분 인수 규모나 금액에 관해서는 함구했지만, 블룸버그통신과 CNBC는 “이번 투자로 오픈AI가 순환 거래를 또 추가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오픈AI는 AMD, 코어위브 같은 협력사에 지분 투자를 단행할 때도 순환 거래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스라이브 홀딩스는 2010년 조시 쿠슈너 CEO가 설립한 스라이브 캐피털이 AI 관련 기업을 창업하거나 인수하기 위해 올 4월 설립한 회사다. 스라이브 캐피털은 소수 기업에 대규모로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그 지분을 여러 해 동안 보유하는 전략으로 이름난 벤처 투자회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라이브 캐피털은 2023년 약 270억 달러(약 39조 7000억 원)의 기업가치로 오픈AI에 처음 투자하고 이후 자금 조달 작업까지 주도했다.
구글이 사실상 챗GPT를 추월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오픈AI는 3일 AI 모델 훈련 과정을 점검하는 폴란드 스타트업 넵튠AI도 인수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넵튠AI는 AI 모델의 훈련 과정을 감독·분석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기업이다. 넵튠AI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모델의 훈련 속도를 높이고 문제를 사전에 시정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오픈AI는 이날 인수 가격 등 구체적인 거래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다. 야쿠프 파초키 오픈AI 수석과학자는 “넵튠AI의 도구를 우리 AI 모델 훈련에 깊숙이 통합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모델이 학습하는 방식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월가에서는 오픈AI가 경쟁 기업들에 위협은 받고 있지만 아직은 단기간에 벼랑 끝에 몰릴 수준은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다만 챗GPT의 지배적인 위상이 3년 만에 사실상 끝나간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당분간 AI 모델 주도권을 둘러싸고 미국 기업은 물론 중국 회사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더욱이 손 회장은 닷컴 버블 시기 전 세계 부자 1위까지 올랐다가 거품 붕괴로 전 재산의 99%를 날렸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손 회장은 이후 통신·인터넷 기업 투자로 오뚝이 같이 일어서서 중국 알리바바, 한국 쿠팡(본사는 미국)의 성공 신화에 젖줄이 됐다. 손 회장의 오픈AI 베팅이 과거 실패를 반면교사 삼은 또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될지 여부도 앞으로의 화젯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손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돈독한 친분을 바탕으로 10월 17~19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에서 글로벌 주요 기업 CEO 70여 명이 참석하는 골프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전설적인 골프 선수 게리 플레이어의 90세 생일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행사였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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