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100년] GDP는 5.3만배 껑충, 문맹률은 78%→0%…광복 이후 대한민국

2025-08-18

한국이 수출을 처음 시작한 1950~60년대만 해도 자연 광물이나 수산물이 주종을 이뤘다. 1961년 한국의 최대 수출품은 철광석이었다. 10대 수출품에는 중석·무연탄·흑연을 포함해 광물만 4개. 생사(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오징어·돼지털 등도 여기에 포함됐다. 다람쥐·갯지렁이·뱀·메뚜기 등 동물도 닥치는 대로 외화벌이의 수단이 됐다. 환경미화원은 거리의 은행잎을 모았다. 중풍 치료제인 유로키나제를 수출하기 위해 공중화장실의 오줌도 수집했다. 이런 노력 있어 전쟁 폐허 속 ‘최빈국’ 한국은 광복 80년 만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일등국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광복 80년, 센서스 100년 “숫자는 기억한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에서 통계 조사를 시작한 건 1925년 인구총조사(센서스)부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총조사는 1949년에 실시했다. 센서스 100년의 역사에는 광복 이후 80년을 포함한 한국의 발전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6·25 전쟁이 끝나고 국가 재건이 시작될 무렵인 1953년 한국 명목 GDP(국민총생산)는 477억4000만원(약 4억7740만 달러, 당시 달러당 원화값 100원 기준)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 1위 미국 GDP(3970억 달러)의 약 0.12% 수준에 불과했다. 그랬던 한국은 연평균 17% 성장을 이어가며, 지난해 GDP 2556조8574억원을 달성했다. 70여년 만에 경제 규모가 5만3500배 성장한 것이다.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1953년 67달러에서 지난해 3만6745달러(약 5012만원)가 됐다. 특히 2023년부터는 한국의 GNI가 일본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성공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다.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을 바탕으로 수출 중심의 제조업 육성 정책은 한국 경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수출은 1956년 2500만 달러에서 지난해 6838억 달러로 확대했다. 이는 전 세계 수출의 4.8%에 해당하며, 세계 6위 규모다. 수출품은 1960년대 광물·농수산물에서 섬유로, 이후 전자·자동차·반도체 등 중화학·첨단산업으로 바뀌었다.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방위산업과 원전은 이제 세계에 수출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한국의 조선업은 미국이 의존하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산업구조의 변화도 크다. 1950년대 초 농림어업에서 70년대에는 제조업이 주류를 이뤘고, 80년대 이후에는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졌다. 1953년 농림어업 부문이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2%였지만 2023년에는 1.5%에 불과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 안정과 시장경제 제도 확립은 한국의 고속 성장의 버팀목이 됐다.

아궁이 옆 8남매에서 1인 가구까지

통계청의 센서스에 따르면 1949년 당시 남한 인구는 2017만명에서 2022년 5175만명(아시아 13위, 세계 29위)으로 약 2.5배 증가했다. 1960년대만 해도 3대, 심지어 4대가 한집에 사는 풍경이 익숙했다. 가족 중심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가족 수가 10명이 넘는 대가족도 드물지 않았다. 1952년 평균 가구원 수는 5.4명이었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탈바꿈하자 가족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80년 평균 가구원 수는 4.6명이 됐고, 1995년에는 3.3명, 2005년 2.9명으로 더 줄었다. ‘4인 가족’ 평균인 시기도 지나고 있다. 2023년 한집에 사는 가족은 평균 2.2명에 불과하다.

저출산·고령화로 노령화지수는 1955년 8(유소년 100명당 고령자 8명)에서 지난해 186.7로 상승했다. 기대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2023년 83.5세로 늘었다. 대신 이민자 수는 늘고 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민자 수는 2006년까지 3만9000명이었지만, 지난해엔 32만4300명(누적기준)으로 증가했다.

문맹률 78%에서 고학력 사회로

1945년 문맹률은 약 78%였다. 성인 10명 중 8명은 글을 읽고 쓸 수 없었던 수준이었다. 문맹률은 1970년 12.4%로 크게 감소했고, 2020년대에는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이 됐다. 기본 교육의 확산과 국가 주도의 교육 개혁의 덕분이다.

전후 베이비붐으로 학생 수는 늘었는데 학교는 턱없이 부족했다. 1960년대 한반 인원이 70~90명에 이르자 콩나물 교실에서 3부제 수업까지 진행됐다. 최근에는 사교육 시장이 발달해 초등부터 고등학생의 약 80.0% 이상이 주당 평균 7.6시간 정도 학원 수업에 참여한다.(2022년 통계청 사교육조사) 공교육도 창의성과 사고력 중심의 교육, 디지털 기반 학습, 융합형 미래 교육 시스템 등의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학력 사회로의 변화는 한국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1966년 기준으로 한국의 박사 취득 비율은 인구 100만 명당 약 35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기준 국내 박사 취득자 수는 1만7528명으로 인구 100만 명당 박사 보유자는 339명 내외가 됐다.(교육개발원) 반도체·AI·로봇·우주산업 등의 첨단 기술력도 일등 국가 수준에 진입했다. 하버드 벨퍼센터의 올해 한국의 종합 첨단기술 순위는 5위(25개국 비교)다. 반도체는 세계 5위, AI (인공지능)은 9위, 우주기술은 13위 등이다. 뉴스·데이터 분석 매체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세계 국가별 국력(power) 순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은 미국·중국·러시아·영국·독일에 이어 6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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