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위해 수술 강요할 수 없어”

2025-08-13

성별 정정을 신청한 사람에게 성확정(성전환) 수술을 강요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또 나왔다. 지난해 성확정수술 강요의 위헌성을 인정한 판결에 이어 트랜스젠더가 성별을 정정하는 과정에서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다시 법원이 명시했다.

지난 5일 서울남부지법 제4-2민사부(재판장 임수희)는 성별 정정을 신청한 트랜스젠더 여성 A씨에 대해 이를 기각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힌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A씨가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은 점에 대해 “외과적 수술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다른 자료를 검토해 사회통념상 전환된 성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로써 족하다”고 판결했다. 성기 성형과 고환 제거 등의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호르몬 치료를 받는 등 신청인이 일생을 살아오며 느낀 성별에 대한 인식, 사회적 환경 등을 고려해 성별 정정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2006년 대법원은 법적 성별정정을 허가하는 전원합의체 결정을 내리면서 성별정정 결정에 참고할 사무처리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을 마련했다. 사무처리지침 제6조 제3·4호를 보면 재판부는 ‘성확정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을 신청인에게 참고서면으로 받을 수 있다. 이 규정은 두 차례 개정을 거쳐 ‘허가기준’에서 ‘참고사항’으로 바뀌었지만 일부 법원은 여전히 성별 정정을 허가할 때 신청인에게 외부 성기를 갖출 것을 요구해왔다. 이에 따라 경제적 이유 등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트랜스젠더는 ‘운’에 기대 성별정정 허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4월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은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B씨 등 5명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며 “법률이 아닌 사무처리지침 조항을 들어 성별 정정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제한은 법률로만 가능하다는) 법률유보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는 성확정수술 여부를 성별정정 허가 기준으로 삼는 법 관행의 위헌성을 지적한 첫 판결로 주목 받았다.

이번 A씨에 대한 판결도 같은 논리를 따랐다. 재판부는 “사무처리지침의 ‘성전환수술’은 허가 요건이 아니라 참고 사항”이라며 “신청자가 단지 성전환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별정정 신청을 기각하는 것은 법리에 명백히 반하는 해석”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청주지법 판결 내용을 인용하며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세계 여러 국가는 모두 성별정정 허가 요건으로 성전환수술 등을 강제하지 않고 이러한 국가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겪을 수 있는 기본권 침해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성확정수술을 강요하는 판결은) 신청자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침해·훼손 행위를 하도록 몰아가 건강 위험에 대한 공포와 거액의 수술비 부담으로 인한 경제적 곤궁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성기를 제거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공중목욕탕이나 화장실에 출입해 위협할 것이라는 등 편견을 “일반인의 성전환자에 대한 이해 부족에 따른 우려”로 지적하며 “다른 성이 되기를 원하면서 그 성별의 사람들에게 배척받거나 자신을 혐오시선에 노출시키는 성전환자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실제 A씨는 폭력 등을 겪어 공중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다.

A씨는 “성별 정정은 법적 절차에 대한 기한이 없어 신청자는 판사가 온정적으로 빨리 판단해주길 바라며 그저 기다려야 한다”며 “그 시간 동안 트랜스젠더는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인생을 동결당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B씨의 대리인을 맡은 공동법률사무소 이채 송지은 변호사는 “전향적 판결 이후로도 법관의 가치관이나 재량에 따라 성별정정 판단이 갈리는 사례가 많았다”며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할 수 있는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구속력 있는 법률 등이 마련되고 제도적 논의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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