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점’ 찍던 185㎝ 사내…“우습겠지만” 아내에 한 고백

2024-10-10

권근영의 ‘아는 그림’

그의 그림을 보러 용인까지 15만 명 가까운 유료관객이 몰렸습니다. 이 미술관 역대 최다 관람객입니다. 지난해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입니다. 이 정도로 관객을 오게 할 수 있는 한국 미술가, 많지 않습니다. 이중섭·박수근처럼 ‘국민화가’라 부르기는 어색하지만, 한국 미술의 블록버스터가 된 김환기. 뉴욕에서 쓸쓸히 보낸 마지막 11년 동안 그는 이런 장면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아, 좋은 그림 그릴 자신이 있고,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은 왜 이리 적막할까. (1965년 1월 13일의 일기)

그가 세상을 뜬 지 50년. 그의 세계가 인정받는 데 반 세기 가까이 걸렸습니다. ‘아는 그림’ 두 번째는 ‘점화의 탄생’, 경매 가격 뒤에 가려진 진짜 그림 얘기입니다. 달과 항아리 그리기를 좋아하던 김환기가 어떻게 해서 점화를 그리게 됐을까요. 또 점화는 오늘날 왜 높은 평가를 받게 됐을까요.

점화를 낳은 김환기의 뉴욕시대, 시작은 1963년 10월 3일이었습니다. 쉰 살 김환기는 이날 오전 김포공항에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상파울루 비엔날레로 떠났습니다. 1989년에야 해외여행 자유화가 됐으니, 출국은 이렇게 온 가족이 차려입고 공항으로 배웅할 만한 대사건이었겠죠. 더구나 ‘국가대표’로 미술제에 참가하는 거였으니까요. 그러나 사진 속 누구도 이것이 영이별일 줄은 몰랐을 겁니다.

1951년 시작한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비엔날레로 빠르게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섬의 달밤’ 등 세 점을 보낸 김환기는 개막 일주일 뒤에야 상파울루에 도착합니다. 회화 부문 명예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작가의 첫 국제전 수상입니다. 김환기는 2주간 참가단 대표로 수집한 자료와 보고서를 문교부에 보낸 뒤 10월 20일 뉴욕에 도착합니다. 그러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였을까요. 그는 거기서 뭘 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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