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화된 기후위기와 고령화 등으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기후 영향을 덜 받고 노동력은 줄일 수 있는 스마트팜의 확산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도래와 함께 시설농업 현장에 등장했던 스마트팜의 국내 보급률은 극히 저조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시설원예 스마트팜이 전체 재배면적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이고 연평균 증가율도 3.9%에 그친다.
스마트팜은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농산업 구조혁신의 한 축이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연중 일정한 품질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농작물 생장 정보, 토양 상태 등을 분석해 최적의 재배조건을 설정하는 데이터 기반 농업도 가능하다. 농업기술 상향평준화를 통한 품질향상과 생산성 증대는 물론 자동화로 인력 투입을 최소화함으로써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조사결과 스마트팜으로 전환한 농가의 노동력은 2023년 기준 평균 10.3% 이상 줄어든 반면, 생산성과 소득은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27년까지 시설원예 스마트팜 재배면적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최장 10년간 빌릴 수 있는 임대형 스마트팜과 관련 기업을 집적화한 ‘스마트농업 육성지구’ 4곳을 올해 지정한다. 20㏊ 규모의 스마트과수원 특화단지를 3곳 조성하고 2030년까지 60곳으로 늘릴 계획도 밝혔다. 스마트팜 종합자금 지원 대상에 비닐하우스도 포함하고 ‘스마트농업관리사’ 국가자격제도도 도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스마트팜이요? 누가 좋은 거 몰라요?” 현장에서 늘 듣는 말이다. 그렇잖아도 농가경영비 부담과 농업소득 감소에 허덕이는 대다수 농민들과 청년농들에겐 먼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막대한 시설 구축비 등 높은 진입 장벽 때문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정부 지원이 더욱 확대되고 도입 비용이 하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마침 농협이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으로 기존 비닐하우스에 스마트팜 ICT 장비를 접목하는 ‘보급형 스마트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ICT 장비 가격을 낮춰 중소규모 농가가 선호하는 필수시설을 갖춘 합리적인 비용 모델을 개발한다고 한다. 본인에게 필요한 최소 사양보다 더 큰 규모를 도입하려다 보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만큼 현실적으로 도입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된다.
스마트팜 확산을 위해서는 갈수록 쪼그라드는 R&D 예산확보 또한 시급하다. 우리 스마트팜 기술수준은 유럽연합(EU)과의 격차가 4년에 달하며 미·일·중에도 뒤진다. 단순 제어 기능을 갖춘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빅데이터·AI 기반 정밀 생육관리 모델로 고도화해야 한다. 2022년부터 급증한 농사용 전기요금도 문제다. 특히 스마트팜은 전기 소비량이 많은데 올 하반기에도 전기요금이 인상될 움직임이다.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 확산’이란 국정과제가 헛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관계당국은 신중하게 대처해주길 바란다.
하늘이 짓는 농사는 첨단기술이 좌우하는 농사로 변모하고 있다. 스마트팜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수급불안을 해결하고 위기에 처한 우리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대 ‘농기계 반값 공급 계획’ 등을 통한 농업 기계화사업으로 벼농사 기계화율을 98%까지 끌어올린 경험이 있다. 스마트팜은 과연 언제까지 언감생심일까?
김진철 제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