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전 세계 조강 생산과 철강재 소비 순위에서 중국에 이은 2위국이다. 엄청난 인구로 인해 1인당 철강재 소비량은 아직 100㎏에 미치지 못하지만 생산과 소비 증가율이 10%대 중반에 이를만큼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다. 특히 자동차·부품 및 건설 등 인프라 개발 부문의 꾸준한 성장으로 철강재 소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인도에서 철강은 규제 완화 산업으로 지정 이후 2017년에 국가 철강 정책(National Steel Policy)을 발표하고 10조를 지출해 2017년 대비 2배 이상 생산능력을 키웠다. 올해 모디 정부에서 새로 발표한 비전 2047에서는 2047년까지 인도 내 철강 생산량을 연간 5억 톤으로 3배가량 늘리고, 생산 시 CO₂ 배출량을 조강 1톤당 2.5톤에서 2.25톤으로 낮출 계획을 세웠다. 또한 자국 내 자원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단기적으로 국립광물탐사신탁(NMET)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입키로 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 중인 인도 정부의 개발 계획이 구체화 될수록 향후 인도의 철강재 소비는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데 인도 철강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인도 신용평가기관 ICRA는 이번 회계연도(2024년4월~2025년3월)에 인도의 철강 생산설비 가동률이 4년 내 최저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품 범람으로 자국 제철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한 탓이다.
인도 철강 산업은 2021·2022회계연도에서 2023·2024회계연도까지 3년 동안 설비 가동률 80% 이상을 유지했고, 투자에 적극 나섰으며, 부채 수준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런데 올해는 가동률이 7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현지 제철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수입품이 밀려 들어오며 감소했다.
실제로 인도는 지난 2022년까지 철강 순수출국이었지만 건설업 호황과 인프라 투자로 늘어나는 내수 때문에 지난해부터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인도의 높은 GDP 성장률과 건설 및 자동차 부문의 탄탄한 수요가 예상치 못하게 수입 급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회계연도에 압연제품 순수입국이 됐고, 이번 회계연도 첫 7개월(4월~10월)동안 압연제품 수입은 570만 톤으로, 7년 내 최대치를 보였다.
철강은 우리나라의 대(對) 인도 5대 수출 품목이자 우리나라는 인도의 최대 철강 수입국이다. 다만 수출 증가세는 정체돼 있다. 반면에 중국과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 등의 인도향 철강 수출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로 인해 인도 철강부는 일부 철강 수입품에 25%의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는 중국과 한국, 일본을 겨냥해 세이프가드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자국 내 철강 수요가 증가하면서 수입재 유입이 늘고 있는 인도와 달리 우리나라는 반대 상황에 놓여 있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 되면서 국내 철강 수요는 정체되어 있는데, 올해 철강 수입은 다시 크게 늘었다. 마찬가지로 내수 부진을 겪고 있는 중국 업체들이 밀어내기 수출을 늘렸고, 한국 시장이 이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다. 연초에는 엔저를 무기로 일본 철강재 수입도 크게 증가했다.
이와 같은 저가 수입재 물량 공세에 국내 철강업계는 몸집을 줄일 수밖는 벼랑 끝 상황에 놓여 있다. 일부 공장의 가동 중단과 폐쇄 소식은 상당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 저가 수입재에 대한 대응은 아직 미온적이다. 그나마 후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가 이뤄진 상황에 그치고 있다.
철강은 단순히 하나의 금속 소재 산업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안보 산업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저가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철강업 등에 대해서 신속한 조사를 거쳐 필요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점에 다소나마 기대를 갖게 한다. 석유화학산업이 중국발 저가 범용재의 글로벌 시장 잠식으로 생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