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일본에서 들여온 판화의 품목분류를 둘러싼 분쟁에서 조세심판원이 수입업체의 청구를 인용했다. 업체는 해당 작품이 예술성이 인정되는 ‘오리지널 판화’로 부가가치세 면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인천공항세관은 이를 ‘일반 인쇄물’로 분류해 부가세를 부과했다. 업체가 세관 결정에 불복하자 사건은 조세심판원으로 넘어갔고, 심판원은 세관의 처분을 취소했다.
쟁점이 된 작품은 지난 2021년 5월 일본 경매사를 통해 수입된 A 작가의 실크스크린(스텐실) 판화 1점이다. 최초 수입신고 당시 이 작품은 ‘그 밖의 인쇄물’(HSK 4911.91-9000호)로 분류됐다. 이후 업체는 ‘오리지널 판화’(HSK 9702.00-2000호)에 해당한다며 경정청구를 통해 이미 납부한 부가세의 환급을 요구했으나, 세관은 이를 거부했다. 업체는 곧바로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냈다.
두 품목번호(제9702호와 제4911호) 모두 관세율은 0%로 동일하지만, 부가세는 다르다. 제9702호의 판화는 부가세법상 ‘예술창작품’에 분류돼 수입부가세가 면제된다. 반면 일반 인쇄물인 제4911호는 부가세가 부과된다.
◆ 실크스크린과 관세율표 분류 기준
실크스크린은 천이나 나일론 등의 스크린(틀)에 스텐실(형판)을 만들어 붙이고, 스퀴지로 잉크를 밀어내어 종이나 캔버스 등에 그림을 찍어내는 판화 기법이다. 앤디 워홀 등 여러 미술가들이 활용한 예술 표현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술 판화는 물론 의류·포스터 인쇄에도 쓰인다.
관세율표상 ‘오리지널 판화’(제9702호)는 예술가가 원판을 손수 제작하고 사진제판 등 기계적 방법을 쓰지 않고 직접 인출한 판화를 말한다. 반대로 사진이나 기계 공정이 주가 되거나 예술가의 실질적 관여가 부족한 판화는 ‘기타 인쇄물’(제4911호)로 분류한다.

◆ 업체 “작가 손길 닿은 진품 판화… 일반 인쇄물 아니다”
쟁점 작품의 경우 업체 측은 작가가 원판에 밑그림을 직접 그리고 작가 지시에 따라 실크스크린으로 한정된 수량만 제작한 ‘오리지널 판화’라고 주장한다. 작품 하단 여백에 작가의 친필 서명과 제작 연도, ‘A.P.’(Artist’s Proof, 작가 보관용) 표시까지 남아 있어 ‘작가 손길이 닿은 진품 판화’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작가가 작품 제작 과정에 충분히 관여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업체 측은 “미술계 관행상 예술가가 조수나 전문 공방의 도움을 받아 작업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최종 작품에 작가의 서명과 인증이 들어갔다면 그것으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보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당 판화는 사진 현상이나 복제 등 어떠한 기계적 제판 과정 없이 전적으로 수작업으로 완성됐다는 점도 부각했다.
◆ 세관 “작가는 밑그림만 그리고 공방이 제작한 것”
반면 세관은 이 판화를 오리지널 판화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관 측은 “오리지널 판화는 예술가의 손으로 직접 제작돼야 한다”며 “이 작품의 경우 작가는 밑그림만 담당했고 원판 제작과 인출은 제3자인 공방이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한정 부수와 서명, A.P. 표식만으로는 97류(제9702호) 분류를 인정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실제 제작 방식과 물품의 본질적 성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관은 쟁점 판화의 원판 제작 경위나 작가의 구체적인 개입 범위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진제판 등 기계적 요소가 일부 개입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품목분류 해석에는 예술계의 관행이나 작품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세관 측은 “작품에 작가의 서명이 있거나 희소성이 높다고 해서 품목분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어디까지나 법령에 규정된 문구와 기준에 따라 엄격히 분류해야 한다”고 밝혔다.
◆ 조세심판원 “작가 직접 참여, 기계복제 없어… 세관 처분 잘못”
조세심판원은 세관의 처분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심판원은 우선 관세율표 제97류 주2에서 규정하는 오리지널 판화의 정의를 재확인했다.
해당 규정에 따르면 오리지널 판화란 예술가의 손으로 직접 제작한 흑백 또는 채색의 판화를 의미한다. 또한 관련 해설서에서도 “예술가가 사용한 재료나 방법에 관계없이 한정된 원판으로부터 완전히 예술가 손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판화를 포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심판원은 해당 요건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검토한 후 “예술가 A가 작품의 창작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쟁점 판화는 작가가 원판에 밑그림을 직접 그린 흔적이 있고, 작품 하단에 ‘A.P.’ 표시와 작가의 친필 서명·제작연도가 있어 원작 판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쟁점 판화의 제작 과정에서 기계적인 복제 방법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실제 일본 경매사를 통해 확보한 공식 확인서에는 해당 작품이 사진 이미지를 이용한 제판이 아니라 드로잉 방식으로 제작됐다고 명시되어 있다. 심리 과정에서 세관 측도 이 판화에 어떠한 사진제판 공정이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심판원은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이 작품을 제9702호 오리지널 판화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최종 판단했다.
[참고 심판례: 인천공항세관-조심-20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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