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나이 먹을 때마다 궁금하다. ‘시간’이라는 엄청난 질서를 만들어낸 이는 누구일까? 보이지 않는 흐름을 잘게 쪼개고 토막내서 초, 분, 시… 날, 주, 달, 해… 어제, 오늘, 내일… 과거, 현재, 미래…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정리한 현자(賢者)에게 허리 접어 경배하고 싶다.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부터 벌써 그런 구분과 질서가 있었을 것인데 그 시절에 이미 우주의 진리, 생명의 신비를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망원경 같은 기계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 오로지 육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자연을 만드신 신의 섭리를 깨닫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를 궁리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시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시계와 달력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다. 벗어나면 생존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완강한 철옹성을 깨부수고 자기 나름의 질서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앎과 삶이 하나였던 참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다석 류영모 같은 분이 그렇다.
함석헌 선생과 그의 스승인 다석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은 생애를 햇수로 셈하지 않고, 날수로 헤아린 것으로 유명하다. 날수를 세면 하루하루가 죽었다 살아나는 것으로 여겨져 좀 더 삶에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류영모 선생께서 일기에 스스로 ‘오늘 하루살이(一日一生)’로 살아가고자 한다고 적으셨다는데, 이는 ‘날마다 편견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영원의 시간으로 살고자’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다르게는, 잠자는 것과 죽음을 똑같이 보고 영원을 하루 속에서 살고, 하루를 평생으로 여기며 매일 죽는 연습을 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
류영모 선생께서는 1918년부터 살아온 날수를 헤아리기 시작했고, 함석헌 선생도 배워서 따라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숨 쉬는 것까지 숫자로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류영모 선생은 3만3200일(91세)을 사셨고, 들고 난 숨을 쉰 횟수는 약 9억 번이라고 한다. 함석헌 선생은 3만2105일(88세)를 사셨다.
참고로, 다석 류영모 선생은 불경, 성경, 동양철학, 서양철학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에 두루 능통했던 대석학이자, 평생 진리를 추구한 한국의 큰 사상가였다. 불교, 노장사상, 공자와 맹자 등을 두루 탐구하고,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는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모든 종교가 외형은 달라도 근원은 하나임을 밝히는 류영모의 종교다원주의는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류영모 선생은 우리말과 글로써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1956년 〈노자도덕경〉을 우리말로 번역한 〈늙은이〉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 책은 노자(老子)라는 고유명사까지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으로 번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된다. 〈노자도덕경〉을 한자어를 완전히 배제하고 우리말로만 번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선생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류영모 선생은 생활에서도 성인의 삶을 실천했는데, 51세가 되던 때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살았다. 선생의 호 다석(多夕)은 하루 삼시 세 끼를 합해서 저녁 한 끼만 먹겠다는 뜻이다.
다른 것은 감히 흉내 낼 엄두조차 못 내겠지만, 하루하루를 헤아리는 것과 우리말 사랑은 따라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정성껏 살아야 할 텐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매일 매일을 허투루 날려 보내곤 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게 덧없이 지나간다. 정말로 하루하루를 또박또박 정성껏 살고 싶다.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