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방역 정책 좌담회] “정부주도·처벌 위주 ‘한계’…민간참여·장려책 중심 전환을”

2024-10-13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럼피스킨 등 가축질병 발생이 상시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방역정책의 틀을 민간이 주도하는 차단방역 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규제 중심의 방역정책이 신속한 방역 인프라 구축, 과학방역 토대 마련 등 성과를 낳았지만 신종 질병 발생 등 급변하는 방역 여건을 극복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다. ‘농민신문’은 10일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민간 주도 차단방역 추진을 위한 가축방역 전문가 정책 좌담회’를 열어 방역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현장 의견을 들었다.

진행 = 김상영 뉴스콘텐츠국장

- 그동안 방역정책을 평가한다면.

오연수=솔직히 정부의 방역정책에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019년 9월 ASF가 처음 발생했을 당시가 특히 그랬다. 차단방역과 살처분 등이 과도하게 적용됐다. 양돈농가들에 ‘8대 방역시설’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정부와 생산자가 강하게 부딪치기도 했다. 수의사들 또한 농장 출입이 어려워지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국내에선 ASF를 최초로 겪는 상황이었고 2011년 구제역 사태를 겪었던 터라 당시로선 최선의 정책이었다.

강민=국내 가금산업은 중국과 가까워 질병이 전파되기 쉽고, 국토면적은 좁은데 다양한 품종을 사육해 질병관리가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2014∼2016년 고병원성 AI로 가금산업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이후 10년간 방역이 강화됐다.

이로 인해 살처분을 해야 하는 등 어려움은 있었지만 질적·양적으로 방역이 고도화됐다. 예찰이 강화됐고, 살처분도 올해부턴 위험도를 따져 선택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계열화업체·농가·정부가 합심해 이뤄낸 성과다.

- 생산자단체에선 어떻게 보는가.

조진현=정부 주도로 방역정책이 이뤄지면서 다소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다. 2019년 ASF가 터진 뒤 최초 발생지역과 인접지역의 돼지를 대규모로 살처분했고, 발생농장에 대해선 1년6개월간 재입식도 금지했다. 별다른 보상도 없었고, 이로 인해 농가 피해가 컸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방역 수준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다만 과거 상황을 기반으로 마련된 ‘ASF 긴급행동지침(SOP)’ 등이 현재까지 운용되는 것은 문제로, 개정이 필요하다.

김재홍=달걀값이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와 관련되다 보니 그동안 정부는 산란계 방역을 따로 관리해왔다. 산란계농장을 대상으로 한 질병관리등급제·자율방역프로그램 등 강화한 정책이 별도로 운용 중이다.

농가 사이에선 다른 축종보다 방역관리를 잘하는데 왜 더 강한 규제가 적용되는지 불만이 많다. 방역에 소홀하면 살처분 보상금 등이 깎이므로 농장 스스로 방역정책을 위반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허관행=정부는 고병원성 AI 발생을 막기 위해 가금농장의 방역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과태료 부과 기준, 살처분 보상금 감액 기준 등을 만들어 운용 중이다. 그럼에도 농장 내 AI 발생은 반복됐다. 그렇다면 단속·처벌 기준 마련이 AI 예방대책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단속·처벌 위주의 정책을 지양하고 방역관리 우수농가에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방식을 바꿔야 한다.

- 민간 주도 차단방역을 추진하는 정책 방향성엔 동의하는지.

오연수=민간 주도의 방역관리는 양돈산업에선 사실상 이미 시작됐다. 한돈협회 등 생산자단체는 자정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현장에선 농가들끼리 단체 채팅방을 운영하며 서로의 방역 상황을 점검 중이다. 다만 해결해야 할 부분도 있다. 질병이 농장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농가들이 방역에 충실했다면, 정부는 피해를 본 농가가 사업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특히 정책 틀을 전환할 때 정부가 질병 병원체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일제 방역이 아닌 선별 방역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꼭 들어가야 한다.

강민=축산분야 방역은 국민 먹거리 보장, 식품 안전과 직결돼 있다. 이에 따라 초기에는 정부 주도로 진행되더라도 고도화되면 민간으로 넘기는 게 기본적인 방향이다.

다만 민간 주도라고 해서 정부가 뒷짐 지고 지켜만 봐선 안된다. 예를 들어 최근 고병원성 AI가 농장간 수평전파가 이뤄진 사례는 없다. 야생조류로 인한 발생이 확실한 만큼 정부는 조기 예찰을 진행하고 위기 경보를 농장에 신속히 내리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농가는 이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소독을 강화하는 등 차단방역에 나서야 한다. 역할을 분담해 협력하되 민간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 정부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생산자단체 역량을 강화하고 농가 방역의식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서영석=민간 주도의 차단방역을 위해 우선 민간과 정부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예를 들어 한우의 경우 사육규모 50마리 미만인 전업농가에는 수의사를 지원해 백신을 접종하고, 50마리 이상인 농가에는 자가 접종을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백신접종이 농가의 역할인지 정부의 책임인지에 대한 구분이 불명확한 상황이다. 이런 부분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주도적으로 농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과감한 인센티브 도입도 필요하다. 방역에 열심히 협조하면 질병검사를 면제해주거나 살처분 보상금 감액을 면제해주는 등 혜택을 줘야 한다. 반대로 방역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농가엔 엄격한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

조진현=민간 주도 방역이 가능하려면 정부와 농가가 서로 신뢰해야 한다. 2019년 ASF가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5년간 위기 경보단계 ‘심각’을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규제부터 완화해야 한다. 질병이 발생하면 이동제한을 걸고 역학조사를 통해 2주 동안 출하를 금지하는데, 농가를 믿지 못한다는 방증 아닌가.

또한 페널티 수준이 과도하면 농가들의 질병 의심 신고가 늦어질 수 있다. 아울러 구제역 등 백신접종에 따른 이상육 발생으로 농가들이 피해를 보는 만큼 무침 주사기 개발 등 백신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도 내놔야 한다.

김재홍=방역 규제가 워낙 강하다보니 민간 주도로 방향이 전환됐을 때 농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농가들은 현재도 아침마다 소독하고 울타리를 정비한다. 서해안 인근 농가들은 레이저총을 동원해 야생조류를 쫒아내기도 한다.

이 정도가 현재 농가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민간 차단방역이다. 진정한 민간 주도 방역으로 전환하려면 농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역수단의 폭을 열어놔야 한다. 방역 방식을 농장 여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허관행=‘가축전염병 예방법’상 농가가 지켜야 할 방역 준수사항은 33개, 살처분 보상금 감액기준은 22개에 달한다. 가축을 기르는 데만도 바쁜 농가들은 이 많은 방역기준까지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핵심 준수사항을 2∼3개로 압축해 적용하고, 질병 최초 신고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방역 참여 유인을 확대해야 한다.

- 정부에 하고 싶은 제언이 있다면.

김재홍=민간 주도형 차단방역에 대해 생산자와 정부가 동의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아직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은 만큼 연구용역을 추진해 내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오연수=축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수의직 공무원 부족문제 등을 해결할 때도 종국적으론 처우 개선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산업기반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민우·이유리 기자 사진=김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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