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39대 지미 카터 대통령(1977년 1월∼1981년 1월 재임)은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동문으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사 졸업생 중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3년 해사에 입교한 카터는 전쟁과 상관없이 4년제 정규 과정을 마치고 1947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초임 시절 수상함 대신 잠수함에 배치된 그는 앞날이 촉망되는 장교였다. 당시 미 해군에선 화석 연료 대신 원자력을 추진 동력으로 삼는 핵잠수함이 최신 무기로 급부상했는데, 카터는 장차 핵잠수함에서 근무할 요원으로 뽑혀 특별 교육을 받았다.

미 해군은 카터를 일반 대학에 보내 6개월 동안 원자력 발전의 원리와 원자로 구조·설계 등에 관해 배우도록 했다. 1953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카터가 가업인 땅콩 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대위를 끝으로 전역하지 않았다면 그는 미군의 손꼽히는 원자력 전문가로 대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자력 공학에 대한 카터의 지식은 그가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어 미군 통수권자를 맡았을 때 큰 도움이 된 것이 분명하다. 단언컨대 미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카터만큼 핵무기에 관한 기술적 이해도가 높은 이는 없었다.
1977년 대통령에 취임한 카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정부 부처로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를 신설한 것이다. 에너지부의 핵심 임무는 바로 핵무기의 개발·관리 그리고 군사용 원자로 제작이다. 오늘날 미군이 운용하는 핵무기는 물론 핵추진 항공모함 및 잠수함에 탑재된 원자로 등도 모두 국방부가 아닌 에너지부 자산이다. 엄밀히 말하면 에너지부 소유의 자원을 미군이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 업무도 에너지부의 몫이다. 미 전역에 20개 가까운 연구소를 두고 원자력 등 에너지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는 에너지부는 국방 조직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미 조이스 미 에너지부 국제협력국 차관보 대행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에너지부가 올해 4월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조치의 파문이 가시지 않은 터라 이목을 끈다. 한국이 어쩌다가 민감 국가로 전락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서 일한 한국계 연구원이 원자로 관련 고급 정보를 입수한 뒤 몰래 미국을 출국하려다가 적발된 탓’이란 분석을 제기하는데 확실치 않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실무진의 물밑 접촉에서 한국의 민감 국가 지정 해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담 후 대통령실 측이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밝힌 점을 보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마침 조이스 차관보 대행이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두 나라 간 원자력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하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고대할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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