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TSMC의 삼성 고사(枯死) 작전

2025-01-30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상대하는 전략으로 통한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대만 TSMC가 한국에 이이제이 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산업, 보다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를 억누르기 위해서다.

생뚱맞게 들릴 수 있는 주장의 근거는 이랬다. TSMC와 SK하이닉스의 밀월이다. TSMC는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반도체 제조(파운드리) 업체지만 인공지능(AI) 대중화를 앞두고 패키징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역할 분담을 해 지배력을 더 높이고 삼성전자로 갈 수 있는 물량마저 차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설명으로 풀면 이렇다. TSMC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연결하는 패키징까지 주도하고 있다. AI 가속기 또는 AI 반도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으로 HBM을 만들어 TSMC에 공급만 한다. 그런데 앞으로 TSMC는 이 일, 즉 GPU와 HBM을 패키징하는 작업을 SK하이닉스와 일정 수준으로 나누려 한다는 분석이다.

여기엔 자연스레 반문이 따른다. GPU와 HBM을 마치 하나의 반도체럼 동작케 만드는 패키징은 어차피 TSMC가 1등인 데, 홀로 다 하면 되지 굳이 나눠할 이유와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이제이 전략이 나온다. 과식하면 탈이 나듯 시장에서 독점은 문제가 된다. 현실적으로도 100%를 독식은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현명한 방법은 우군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경쟁사로 갈 몫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된다. 그리고 패키징은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

SK하이닉스는 대만 반도체 경쟁국인 한국의 회사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TSMC의 직접적인 경쟁사가 아니다. (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자회사가 있지만 TSMC와는 괴리가 큰 8인치 공정에 머물고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직접적으로 TSMC 밥그릇을 뺏겠다고 나선 곳이다. 2나노미터(㎚)와 같은 첨단 공정에서 계속 도전하고 있다. TSMC에 삼성전자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파운드리를 더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를 억누를 최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AI 시대에 HBM은 계속 필요하니 SK하이닉스와 손잡으면 공급망 안정화가 가능하고, 또 패키징을 일정 수준 나누면 삼성전자도 견제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풀이다. 아울러 패키징 능력이 넉넉하지 않으면 본진인 파운드리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TSMC가 SK하이닉스와 긴밀하게 움직이려 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정말 앞으로 벌어질 일일까.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예상과 추측에 불과할 지 모르겠다. 일각의 지나친 상상일 수 있다. 그러나 돌아가는 행보는 심상치않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GPU와 HBM을 묶는 첨단 패키징 사업을 준비 중이다. 2.5D 패키징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술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보강도 한창이다. TSMC와 SK하이닉스는 점점 더 밀착하고 있다.

시장은 늘 변하고, 판도 새로 짜여지기 마련이나 중요한 것은 이거다. 삼성 파운드리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첨단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데, 경쟁은 심화돼 숨통마저 끊어질 지 모른다. 이는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 반도체의 근간이 되는 한국 파운드리의 위기로 직결되기에 가볍지 않다. 절체절명의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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