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움직임으로 본 계엄 사태

2025-01-14

박학에 다변가인 정신과 의사 친구가 최근 글 몇 편을 카카오톡으로 보내 왔다. 엉뚱하게도, 감정 기복이 극심한 경계성 인격 장애 환자 치료에 활용되는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는 심리기제와 계엄 사태의 연관성에 관한 글들이었다. 그중 ‘심리툰’이라고 이름 붙인 만화 자료가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이해하는 데 요긴했다.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을 찾은 만취 여성이 막무가내로 약부터 달라는데 의사가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며 거부하자 거칠게 화를 낸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응급실 의사, 마침내 화가 나 되받아친다. 이 심심한 짧은 에피소드를 의학 레토릭으로 풀어쓰면, 환자가 표적이 되는 대상을 만나 당신은 뭔가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자, 비난받은 사람이 ‘악한 대상’과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해 악한 대상이 저지를 법한 일을 실제로 저지르는 것이 된다. 여기서 환자의 비난이 투사, 비난받은 사람의 내면에서 무의식적으로 벌어지는 게 투사적 동일시다. 대통령이 사람 좋은 의사라는 게 아니라, 그의 무모한 계엄 선포를 투사적 동일시의 결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대통령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야당이 ‘계엄 할 거지?’라고 다그친다. 무의식적으로 계엄 감행을 기정사실화한 대통령, 실제로 선포한다.

대통령 탄핵 찬반 9년 만에 재연

태극기 부대 해방감 표출하지만

퇴행적 역사의식, 시대의 비극

물론 현실과는 맞지 않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의 계엄설 발설이 지난해 8월, 검찰 수사에 따르면 대통령은 그보다 다섯 달이나 빠른 3월부터 계엄을 거론했다니 말이다. 어쨌든 의사 친구는 계엄 사태를 보며 문득 투사적 동일시가 떠올랐다고 했다. 최고 권력자의 역사 역주행을 차라리 병리 현상으로 치부하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 된다는 게 우리의 비극이다.

몸풀기가 길었다. 이제부터 본게임. 9년 만에 재연된 대통령 탄핵을 두고 찬반 양편으로 갈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상반된 두 군중 사이에, 투사적 동일시라는 적대적 감정교환이 일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응원봉 군중과 태극기 군중의 내면 심리는 마치 쌍생아처럼 닮은꼴이다.

지금은 명예교수가 된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는 9년 전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다 덕수궁 대한문 앞 태극기 집회를 연구하게 됐다. 짧은 인터뷰도 나누고 참가자들의 주장도 분석해 현장관찰노트를 만들었다. 노트들을 바탕으로 쓴 글이 2019년 책 『감정과 사회』에 실린 ‘언어, 감정, 집합행동’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촛불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군중의 기쁨’ 혹은 집합적 열광이 태극기 집회에서도 나타났다. 젊은 층이 불의에 저항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한다는 자긍심에 몸을 떨었던 것만큼이나 노년층 역시 태극기를 흔들고 군가를 부를지언정 연대의 기쁨, 해방감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태극기 노년층은 침묵과 저항의 부재를 강요당한 채 1970~80년대를 관통한 세대다. 저항에 방관적이거나 오히려 암묵적으로 반대했다. 개인의 출세와 가족 생존을 위한 헌신은 곧 국가에 대한 희생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광장 점유는 난생처음이었으니, 살 맛이 났던 것이다. 개인의 실존 차원에서 태극기 노년층에 돌 던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광장의 자장에서 벗어나면, 촛불과 태극기는 서로를 외면했다고 한다. 태극기의 역사 인식과 미래 전망이 지극히 퇴행적이라는 게 시대의 비극이다.

두 달여 전 출간된 서울대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의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에는 태극기와 보수 우파 기독교 세력 사이의 연결고리라고 할 만한 대목이 나온다.

“나에게는 조국이 준 하나의 계시가 있다. 그것은 건설을 하라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 것이다.”

60년대 서울의 청사진을 그렸던 ‘불도저 시장’ 김현옥(1926~1997)의 에세이 『우리의 노력은 무한한 가능을 낳는다』에 등장하는 개발·발전·건설 같은 어휘가 도시 행정의 언어가 아닌 종교적 부흥회의 언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홍중은 자문한다. “그에게 발전주의는 정치나 행정의 차원을 넘어선 일종의 시민종교가 아니었을까?”라고. 그런 시장과 함께 시대를 통과해 온 오늘의 태극기 군중과 전광훈의 결합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김왕배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2025년의 태극기는 9년 전의 태극기에서 더욱 퇴행한 느낌”이라고 했다. “과거의 탄핵 찬반이 그래도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면 지금은 이해관계의 문제로 변질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지 않나. 문제는 특정할 수 있는데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또 다른 우리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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