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금산분리와 언산분리의 원칙

2025-12-07

지난달 2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기업인 한전KDN·한국마사회에서 유진그룹으로 YTN 최대주주를 변경하도록 승인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5인 정원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추천 2인 체제’에서 의결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지 절차 위반이나 편법으로 무리하게 진행된 과정이 이 사안의 핵심은 아니다. 보도전문방송이 민영화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산업자본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이 본질이다. 산업자본이 탐내는 것은 보도의 힘이다. 사유화해 보도 아이템과 방향을 멋대로 주무려는 속셈이다. 보도나 논평은 진실을 전달하는 공론의 마당이 아니라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공간이 된다. 깊이 있는 보도로 높은 영향력을 가진 언론일수록 더 쓸모가 있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유진그룹으로 넘어가기 전 YTN은 뉴스 신뢰도에서 2021년과 2022년 연속 1위, 2023년과 2024년 2위를 차지했다. 2020년 미디어미래연구소가 언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공정성 부문 1위를 기록하는 등 늘 최상위권이었다. 그만큼 군침이 도는 대상이었다.

산업자본은 언론을 정치권력과 자본이 야합하는 거간꾼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긴다. 권력에 아부하는 데 동원할 수도 있고 때로는 모기업의 방패막이로 쓸 수도 있다. 기업은 각종 정부 사업을 수행하거나 정부기관의 인허가, 감독 등을 받으므로 정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언론을 앞세워 특별한 사업에 참여하거나 정책을 관철해 이익을 꾀할 수도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불공정하게 사적으로 이용할 요량이 아니라면 시장가에 비해 훨씬 비싸게 YTN 지분을 사들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한 보도는 소유기업에 직접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송 뉴스 시장이 앞으로 많은 수익을 기대할 전망도 밝지 않다. 유진그룹이 YTN 대주주가 된 뒤 새로 취임한 사장은 곧바로 권력을 향한 노골적인 사랑고백을 한다. 김건희씨 관련 보도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로 포장한 대윤석열 정권 사과를 했다.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전달하려 한 기자들의 치열한 노력은 편파왜곡 보도로 매도당했다.

사적 소유 언론들은 소유주 이익을 대변하고 지켜주는 도구 구실을 할 우려가 크다. 소유자본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만들기도 하고 사업을 홍보하는 영업조직이 되기도 한다. SBS의 ‘물은 생명이다 캠페인’ ‘광명동굴 관련 보도’ 등은 계열 회사인 태영건설의 사업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산업자본은 사적으로 언론을 동원하려고 내부 자율성·독립성을 무너뜨리고 조직을 장악한다. 비판·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살아 있으면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YTN은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폐지했고, 보도국장 임면동의제를 지키지 않았다. 최근엔 대주주인 TY홀딩스 임원이 SBS 보도본부 논설위원으로 오고, SBS 탐사보도팀 간부는 TY홀딩스로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산업자본과 방송사가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금산분리 원칙은 금융·산업자본이 서로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도록 분리하는 정책이다. 산업자본이 금융기관을 지배하면 사금고처럼 운영되면서 특정 기업에 유리하게 대출하는 등 자금 흐름이 왜곡되거나 자칫하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이 사유화한 언론은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부실언론은 경영이 어려운 언론이 아니라 독립성·공정성이 약화된 언론이다. 언론의 존재가치는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실언론은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약화시키며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금산분리 못지않게 언산분리 원칙이 중요한 이유다. 소유구조 해법 없이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보도책임자 임면동의제를 법에 의무화하는 것만으로 산업자본의 보도 사유화를 막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새로 구성되는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에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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