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지금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수화기 건너편 남성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중국 공안이라는 소속을 밝힌 건 “사무실에 있다”는 대답을 들은 뒤였다. 지난 2일 오후 갑자기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6년여 만에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찾은 날이었다. 취재에 집중하느라 전화를 받지 않은 동안 10여 차례나 더 벨이 울렸다. 1시간여 만에 회신을 받은 공안 요원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30여 분 뒤 공안 요원 3명이 베이징총국으로 찾아왔다. 고압적인 자세로 동선과 취재 내용을 캐물었다. 기자가 김 위원장이 도착하기 전 베이징역에 나갔던 걸 문제 삼았다. “중국의 법과 규정을 지키라”며 당국의 불이익 조치 등을 암시했다. 어떤 행동이 어떤 법을 어겼는지 따져 물었지만 같은 답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다른 특파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경로로 ‘위험한 취재를 하고 있으니 문제 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들었다. 이미 실시간 위치를 파악한 분위기였다. 현장 취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았다.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확인한 뒤 삭제하는 건 기본이다. 아예 사무실까지 ‘에스코트’ 당해 억류된 사례도 있었다.
김 위원장이 머물던 북한대사관 근처에선 단순히 ‘앞을 걸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여권을 제시하고 신분을 확인받아야 했다. 앞서 김 위원장이 지나는 단둥시로 향했던 특파원들은 취재 중 출입국관리국에 끌려가 장시간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이 된 중국 생활이다.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선 예민한 단어를 쓰거나 중요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 여행지 숙소나 관광지에서 방문 목적과 동선을 물어도 그러려니 넘겼다. 하지만 ‘모든 걸 보고 있다’는 짐작이 현실로 다가오는 건 다른 차원의 압박감이다.
중국은 관영 매체라는 정문을 열어둔 채 세계를 만난다. 한국 특파원을 비롯한 외신 기자들은 중국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줄 ‘뒷문’을 파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중국 당국의 의도에 벗어난 보도엔 채찍이 날아든다. 외교부나 공안으로 불려가 티타임을 하기 일쑤다. 입맛에 맞지 않는 특파원엔 열병식 등 주요 행사에 취재증 발급을 불허하는 등 실질적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오늘도 ‘출입국관리국’ 담장 위를 걷는다. 마주한 중국에서도, 등 뒤로 한국에서도 화살은 날아든다. “그러니까 기사를 잘 쓰셨어야지.” 최근 만난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 뇌리에 감돈다. 입 안이 유난히 쓰디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