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93화. 혜성

2025-10-12

‘살별’ 혜성은 왜 불길한 징조 됐을까

오랜 옛날, 잉글랜드에 해럴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력한 권력을 지닌 백작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여러 전쟁에 참여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많은 이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죠. 사람들은 뛰어난 전사로 이름 높은 그가 잉글랜드를 훌륭하게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들은 제각기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공했어요.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잉글랜드 군대에 패해 모두 전사했지만, 아직 바다 건너 노르망디에서 출발한 부대가 있었죠. 해럴드가 이에 맞서려 할 때, 하늘에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불길한 꼬리를 드리운 별, 혜성(살별)이 나타난 것이죠. 사람들은 그가 패배하고 왕이 바뀔 것이라 걱정합니다. 불길한 징조에도 불구하고 해럴드는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지만, 결국 패배하며 전사하고 맙니다. ‘혜성이 왕을 바꾼다.’ 이 내용은 해럴드의 기록을 남긴 바요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에 그려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어요.

개천(開天)이란, 하늘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천지개벽과 같은 의미를 지닌 이 말은 본래는 붙어있던 하늘과 땅이 서로 떨어지면서 세상이 생겨난 것을 뜻하죠. 하늘과 땅이 본래는 하나였지만 서로 떨어졌다는 말은, 하늘과 땅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실제로 많은 신화에서 하늘은 지붕이나 덮개처럼 어떤 물체로 묘사되죠. 저 먼 곳에서 우리 세상을 덮고 있는 변함없는 존재. 옛날 기(杞)나라에서 한 사람이 “혹시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에 기대어 살 것인가”라며 걱정했을 때, 사람들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기나라 사람이 하늘 무너질라 걱정한다(기인우천·杞人憂天)’라고 비웃었죠. 여기에서 쓸데없는 근심을 뜻하는 기우(杞憂)라는 표현이 나왔는데, 하늘이 절대로 무너지거나 변할 리 없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하늘은 변화합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별들이 움직이죠. 처음엔 걱정하던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그것이 반복되는 세상의 규칙임을 깨닫습니다. 마야나 아스테카처럼 태양이 꺼질 것을 우려하여 산 제물을 바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하늘이 변함없이 자리하리라 생각하며 안심했죠. 하지만, 이따금 하늘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있었어요. 화성처럼 밝은 빛과 함께 급하게 역행하는 별, 금성처럼 낮에도 하늘 높이 떠오르는 별처럼요.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던 것은 어디선가 나타나 점차 밝아지며 마녀가 타는 빗자루처럼 꼬리를 늘이는 불길한 존재, 살별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혜성은 먼 곳의 천체들이 돌아다니다 태양계 안쪽에 들어선 것인데요. 주로 얼음으로 이루어진 천체가 태양열에 녹으면서 물이나 여러 물질이 꼬리처럼 길게 늘어져 보이는 것이죠. 태양계 외곽의 먼 곳서 오가기 때문에 주기는 매우 길지만, 대개 정해진 기간마다 나타나곤 해요.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혜성은 평범한 별이 아니었죠. 중국의 역사서에선 혜성이 나타날 때 반드시 전쟁이나 반란, 황제의 붕어(세상을 떠남) 등이 있었다고 기록하며, 로마에서도 황제의 죽음을 알리는 별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초, 한 학자의 연구가 이런 불안을 몰아냈죠. 1705년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과거에 나타난 여러 혜성이 같은 천체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다시 나타날 것을 예언했어요. 그가 사망하고 한참 후인 1758년, 그의 예언대로 혜성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과학이 미래를 예견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고, ‘혜성은 불길한 징조’라는 점성술은 힘을 잃게 되었죠. 그 순간 인간은 하늘의 변덕을 힘없이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미래 가능성을 계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변화를 신비로 남겨두지 않고 그 이유를 찾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이 혜성이라는 하늘의 변덕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죠. 그러나,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1910년, 유럽에서 큰 소동이 있었어요.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치고 지나간다는 예측 때문이었죠. ‘혜성 꼬리에는 독가스가 있어 지구 생물이 절멸한다’는 소문이 퍼지며 마스크에 산소통, 자전거 튜브까지 온갖 물건이 동나고, 혜성 꼬리 특효약 같은 사기 상품도 나돌았어요.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한 기나라 사람처럼, 불안에만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아무 일 없다’는 과학자의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5월 18일. 지구는 혜성의 꼬리를 지나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자살 소동처럼 스스로 일으킨 혼란만이 있었을 뿐이죠. 수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 혜성이 전쟁을 일으킨 건 아니지만 혜성이 낳은 불안, 기우처럼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불안이 이런 시대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다고도 하죠. 천지개벽 이래 불안을 안겨준 미지의 존재, 혜성. 사람들은 혜성을 불길한 징조라 불렀지만, 혜성을 불길한 존재로 만든 것은 바로 ‘예기치 못한 변화’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변함없이 존재하리라 여긴, 질서 있게 움직인다고 여긴 하늘에 생겨난 이변.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천체는 어쩌면 우리 마음을 비치는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혜성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 말이죠. 2025년 10월, 세 개의 혜성이 다가온다고 합니다. 아틀라스(Atlas), 스완(Swan), 그리고 레몬(Lemmon). 별로 크진 않기에 쉽게 찾기는 힘들지만, 쌍안경으로 어쩌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죠. 과연 이들 혜성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질까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