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경계선 학생 수요 10배 폭증했는데…예산은 ‘반토막’

2025-01-24

난독증과 경계선 지능 등 이른바 ‘느린 학습자’로 불리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 수요가 3년 만에 10배 급증했지만 예산 부족과 법적 한계로 교육 현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간 지원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학습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실태 조사와 법적·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느린학습자 3년 새 3119명→7622명 증가

작년 난독증 1789명, 경계선 지능 1581명 지원

복합적 요인으로 학습 어려운 학생 4252명 달해

24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지역학습도움센터를 통해 지원을 받은 느린 학습자 학생 수는 2021년 말 3119명에서 2024년 말 7622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중 난독증 학생은 195명에서 1789명으로, 경계선 지능 학생은 154명에서 1581명으로 각각 10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난독증 학생의 89.7%, 경계선 지능 학생의 72.5%가 초등학생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정서적·심리적 문제나 가정환경으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같은 기간 1.5배 증가한 4252명에 이르렀다.

난독증과 경계선 지능 학생 지원 수요가 폭증한 이유는 조기 진단 체계가 확대되면서 그동안 파악되지 않았던 학생들이 새롭게 진단받고 지원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난독증은 정상 지능을 가진 학생이 읽기와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경계선 지능은 지능지수(IQ)가 70~84로 학습과 일상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두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례도 많아 세밀한 지원 체계가 요구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난독증은 초기 1년간 집중 지원하면 눈에 띄게 개선된다”며 “특히 초등 저학년 시기의 적절한 지원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 올해 예산 43.6% 삭감

경남 50%, 전남 30% 등도 예산 축소

“농어촌 전문기관 전무, 지역 격차 심화”

“안정적 예산 확보, 매년 반복되는 과제”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시교육청의 관련 예산은 2023년 68억 원에서 2024년 78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올해는 44억 원으로 대폭 줄게 됐다. 이는 지난해 대비 43.6% 삭감된 수치다. 이런 상황에도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학습도움센터를 학습진단성장센터로 개편·확대하고 초등 1학년과 고등 1학년을 대상으로 집중 진단 및 지원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숫자 감각이 부족한 ‘난산증’ 학생에 대한 연구도 지속할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계획된 사업이 많아 예산 운영에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지만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상남도교육청은 기초학력 지원 예산이 특별교부금에서 보통교부금으로 전환되면서 절반 이상 삭감됐다. 경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에는 난독 및 경계선 지능 학생을 위한 전문기관이 없어 진단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예를 들어 창원의 전문가가 합천까지 이동해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남에서는 난독 의심 학생 400명 중 특수교육 대상자 등을 제외한 150명만 진단과 지원을 받았으며 올해는 이마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라남도교육청도 관련 예산이 올해 30% 삭감되면서 난독보다 경계선 지능 학생 지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은 지원 예산이 전년 대비 30% 감액됐지만, 교육발전특구 등 다른 항목에서 이를 보충하겠다는 방침이다. 대구와 경상북도교육청은 소폭 증액했다. 다만 난독 및 경계선 지능 학생은 법적 지원 의무 대상이 아니어서 안정적 예산 확보가 매년 과제라는 게 전국 시도교육청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지원은 결국 자발적인 노력과 임시 예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난독 협회 등록 치료사 175명에 그쳐

각 교육청 내 전담 인력도 2~7명 수준

“실태조사와 통계 기반 대책 마련 시급”

언어재활사나 임상심리사 등 전문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난독증협회에 따르면 문해교육전문가 자격증을 가진 인력은 전국에 175명에 불과하다. 교육청은 이들 전문가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여력이 안 돼 대부분의 업무를 위촉 형태로 진행하거나 외부 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청 내 전담 인력도 제한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 본청 전담팀 7명이 모든 업무를 맡아왔다. 경남도교육청은 본청에 3명뿐이며 지원청 단위에는 추가 인력이 없어 업무 과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난독증과 경계선 지능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법적 근거 마련과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구체적인 실태 조사와 적합한 지원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나 부모의 돌봄이 부족한 경우 지원이 중단되거나 시작조차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초등학생의 경우 방과 후 부모와 함께 전문 기관을 방문해야 하는데 이런 점이 현실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송연숙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난독과 경계선 지능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난독을 먼저 해결해야 지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며 “하지만 현장에서는 치료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등 혼란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난독과 경계선 지능은 기초학력 지원의 핵심이지만, 중·고등학생 대상 난독 지원은 부족하며 연구와 분석도 전무하다”며 “또 난독 평가와 치료가 가능한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계선 지능은 ‘낙인 효과’ 등 민감한 사안으로 부모들의 반응이 엇갈려 전수조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난독증은 별도의 실태 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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