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그동안 반도체 제조공정에 쏠렸던 지원을 설계로 확장하며 미국과 중국 주도 시장에서 반전을 모색한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추가경정예산과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예산안으로 반도체 지원금 1600억엔을 확보했다. 이 돈은 반도체 설계 부문 강화에 적극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을 시작했지만, 대부분은 제조 기반 확보에 집중돼 왔다. 지금까지 제조 거점 정비를 중심으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의 구마모토 공장과 일본 키옥시아·라피더스 등의 공장 건설에 약 3조엔을 출자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반도체(GPU)가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기업가치(시가총액)를 세계 1위까지 끌어올리고, 애플이 자체 설계한 반도체로 아이폰의 성능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등 설계 역량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략을 수정하게 됐다.
현재 반도체 설계 분야의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입지는 취약한 상황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미국이 51%를 차지하는 반면 일본은 9%에 불과하다. 특히 설계에 사용되는 EDA 도구 부문에서는 일본의 점유율이 거의 제로로 3%의 점유율을 가진 중국보다 낮다.
이번에 확보한 1600억엔의 예산은 AI,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간호용 로봇 등 첨단분야의 반도체 설계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특히 일본 IT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등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최대 5년간 지원되며 수억~수십억엔이 드는 설계자동화(EDA) 도구 도입과 연구 인력 확보, 시제품 제작 등에 투입된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일본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제조와 설계 두 개의 바퀴가 필요하다"며 "특히 자율주행 등에 특화된 반도체를 설계하면 국내 산업 전체의 수준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자금 지원과 함께 인재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내 학생과 기업 연구자들을 위한 초급부터 상급까지의 설계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미국의 최첨단 설계 기업 텐스트렌트와 연계한 실무 교육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닛케이는 "국가가 산업의 한 부문을 위해 육성 강좌를 개설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경산성은 지난해 말 각의(국무회의)에서 2030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 총 10조 엔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 장기 계획을 세웠다. 특히 최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경제안보 관점에서 설계부터 제조까지 완결된 반도체 생태계를 자국 내에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