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이미지 벗고 국민스포츠 탈바꿈 세계무대 향해 ‘큐’ [S스토리-한국 프로당구 출범 5년 뜨거운 인기]

2025-01-18

“글로벌 꿈의 무대 만든다”

게임방 열풍 이전 당구장 성업

당구인 많아 프로화 성공 점쳐

초창기엔 대한당구연맹과 갈등

프로·아마 상생위 발족해 ‘윈윈’

PBA·LPBA 5년간 쑥쑥 성장

3쿠션 128강전·세트제로 ‘재미’

상금규모 19억여원 → 33억여원

후원 몰리자 경쟁 치열 ‘선순환’

유럽·남미·동남아 선수도 노크

“세계 당구선수들이 꿈꾸는 무대를 만들겠다.”

김영수 초대 프로당구협회(PBA-LPBA) 총재는 2019년 5월 PBA 출범 당시 이같이 선언했다. 선수 수급 문제로 대한당구연맹(KBF), 세계캐롬연맹(UMB)과 갈등이 있었지만 김 총재는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

2019년 첫 대회를 치른 뒤 5년 차를 맞은 프로당구는 김 총재가 바라던 무대로 발전하고 있다. 첫해 남자부(PBA)와 여자부(LPBA) 합쳐 19억6000만원을 걸고 7개 대회를 치른 프로당구는 2024~2025시즌 9개 투어에서 70.9% 늘어난 33억5000만원 상금을 놓고 경쟁하는 무대로 확대됐다.

당구의 프로화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튀르키예 등 유럽은 물론 남미와 동남아 지역에서도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선수들이 PBA-LPBA 문을 두들기고 있다. 2024∼2025시즌 1부 투어 기준 PBA에서는 24명(20.0%), LPBA에서는 8명(5.5%) 외국인 선수가 활약 중이다.

◆한국에서 당구란

당구는 ‘천을 깐 테이블 위에서 공을 막대기(큐)로 쳐 승부를 가리는 종목’이다. 세부종목은 4구와 3쿠션의 ‘캐롬’과 당구대에 있는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풀(포켓볼), 22개의 공을 사용하는 스누커로 구분된다. 국내에서는 캐롬이 가장 인기가 많고, 프로화는 3쿠션으로 추진됐다.

e스포츠 강국인 한국은 과거 ‘당구의 나라’였다. 1998년 서울에만 7245개, 전국에 3만5000개나 되는 당구장은 늘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2023년 기준 국내 편의점 1, 2위를 다투는 CU(1만7762개)와 GS25(1만7390개)를 합친 것(3만5152개)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구 인기가 2000년대 들어 게임방 등에 밀리며 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프로당구 출범 전까지 전국 2만개에 육박하는 당구장이 영업 중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 덕분에 당구의 프로화는 꾸준히 논의돼 왔다.

PBA 관계자는 “나이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당구는 고령화되는 한국 사회와 어울리는 스포츠이기도 했다”며 “2009년 개국한 당구전문채널 빌리어즈TV 시청률이 예상을 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점에서도 프로화 성공 가능성을 엿봤다”고 돌아봤다.

◆프로당구 출범까지

직장인과 대학생은 물론 고교생까지 당구를 즐기는 인구가 많았지만 프로화의 길은 험난했다. 주변에 성공한 사례가 없어 모든 길을 직접 개척해야 했다.

PBA-LPBA는 실패 사례와 원인을 파악했다. 1986년 프로화를 꿈꿨던 BWA(Billiards World Association)는 3쿠션 월드컵을 열었지만 18번째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든든한 후원사가 없었던 탓에 운영비에 대한 부담이 컸고, 선수들에게 줄 상금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선수 수급을 놓고 BWA와 UMB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당구장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실 과거 당구장은 불량 청소년이 모여드는 장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내기 당구를 치다 보니 분위기도 험악했다. 1990년대 영화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장소도 대부분 당구장이었다.

스폰서를 구하고 출범을 준비하고 있을 땐 선수 수급을 놓고 갈등이 생겼다. KBF가 5억5000만원 상금을 걸고 12개 대회를 열고 있던 만큼 대부분 선수는 PBA-LPBA로 향할 게 분명했다. UMB 산하 KBF는 PBA 대회에 나설 경우 3년 동안 연맹 주최 대회출전금지 징계를 예고했다. 선수들은 아마추어 대회와 PBA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봤던 PBA는 KBF와 빠르게 합의안을 만들었다. 결국 2020년 2월 두 단체는 ‘프로아마상생위원회’를 발족해 상생을 위한 상호 지원을 약속했다.

◆거침없는 프로당구 성장세

2019년 6월3일 프로당구 첫 대회인 ‘PBA-LPBA투어 파나소닉 오픈’이 경기도 고양소노캄에서 열렸다. 세계적 대기업 후원을 받으며 첫 대회를 고급호텔에서 개최하니 프로당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대회 규칙도 흥미를 끌었다. 128강 토너먼트로 진행된 이 대회는 상위권 선수들에게 시드를 주지 않았다. 당시 ‘당구 황제’로 군림했던 프레드리크 쿠드롱(벨기에)도 128강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왔다. 또 점수제가 아닌 세트제를 도입했다. 점수제가 실력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었지만 PBA는 스포츠가 주는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신한금융투자 후원을 받아 롯데월드호텔에서 두 번째 대회를 개최하는 등 7개 투어를 열면서 PBA-LPBA는 인지도를 쌓아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PBA-LPBA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지난 시즌엔 10개 기업이 후원하는 투어를 진행했다. 2020~2021시즌에는 새롭게 도입한 팀리그에 6개 팀이 참가했고, 여기에 참가하는 구단은 모두 9개까지 늘어났다.

선수들의 주머니도 두둑해졌다. 지난 시즌 PBA에서 조재호는 상금으로만 3억1900만원을 받아갔고, LPBA 김가영은 1억2000만원을 챙겼다. 여기에 팀 리그 연봉과 후원 등이 더해지면서 선수들은 경쟁에 내몰렸고, 결국 실력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다.

문턱이 높지 않아 다양한 배경의 선수들이 도전하는 덕도 봤다. 2007년생 김영원은 꿈을 찾아 일찌감치 학교를 떠나 프로 당구선수가 됐다. 실업배구팀 서울시청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오정수는 부상으로 은퇴한 뒤 귀향해 당구를 배웠고, 14일 열린 드림투어(2부)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예고했다.

PBA 관계자는 “프로당구 출범으로 당구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냈고, 선수들이 당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모든 선수가 꿈꾸는 최고의 당구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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