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침체‧글로벌 경기부진 속 계엄‧탄핵 정국, 무안 참사까지 악재 잇달아
새해 경기전망 하나같이 '비관적'…경제 연착륙 위한 '랜딩기어' 부재 우려
불꽃 튀는 여야 무한갈등으로 경제는 뒷전…마찰 조정할 '바퀴' 존재 절실
2025년 을사년(乙巳年) 새해가 밝았다. 육십간지의 42번째인 ‘푸른(乙) 뱀(巳)의 해’다. 몸이 커지면 허물을 벗는 뱀은 변화와 혁신을 상징한다.
푸른색은 우리나라에서는 진취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서양권의 ‘블루(Blue)’는 우울함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전례 없이 다사다난한 2024년 마지막 달을 방금 넘긴 우리의 상황은 유감스럽게도 후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가뜩이나 소비침체와 글로벌 경기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 경제는 지난해 말 12‧3 비상계엄과 이어진 탄핵정국, 그리고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까지 이어지며 연쇄 타격을 입었다.
경제단체장들이 내놓은 신년사에는 하나같이 새해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담겨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많은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최근의 대내외 변수를 감안할 때 경제성장률이 1% 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사회 갈등과 저출산·고령화 우려 속에 AI발 산업 패러다임 전환과 글로벌 통상환경의 급변화는 잠시 잠깐의 머뭇거림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연말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불거진 정치적 혼란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고조시켰다”면서, 올해도 내수침체와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에 따른 통상환경의 급격한 변화, 원달러 환율 급등, 반도체‧AI‧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글로벌 경쟁 심화 등이 우리 경제에 위협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우리 경제는 저출생 고령화로 기초체력이 고갈되며 어느새 1%대 저성장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우리 경제가 처한 여러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새해 여러 경제지표, 그리고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하강의 형태가 ‘연착륙(軟着陸)’이냐, ‘경착륙(硬着陸)’이냐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라도 서서히 부드럽게(軟) 땅에 내려앉을 경우 기체와 승객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처럼 경기 하강 국면에서도 연착륙이 이뤄진다면 경제 주체들이 입을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비행기 경착륙이 기체 손상과 인명 손실을 초래하듯 경기 경착륙도 경제 주체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랜딩기어’의 존재다. 제주항공 무안공항 착륙사고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결국 착륙 당시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게 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랜딩기어는 바퀴와 완충기로 구성된 착륙장치를 말한다. 육중한 항공기가 땅에 내려설 때 충격을 완화해 줌과 동시에 두툼한 타이어로 감싼 바퀴가 구르며 기체와 지면의 마찰로 화재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준다. 랜딩기어에 달린 바퀴는 착륙시 잠김과 풀림을 반복해 제동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새해 하강 국면을 맞은 우리 경제에 가장 치명적인 상황은 이 ‘랜딩기어’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탄핵되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서열 1~3위의 역할을 홀로 도맡고, 심지어 그마저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경기 하강의 충격을 줄여줄 완충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경제 회복은 안중에도 없고 대통령 탄핵 이후 대권 향배에만 온 정신을 쏟으며 서로를 쥐어 뜯는 여야간 마찰을 완화하고 충돌에 제동을 걸어 줄 ‘바퀴’의 부재도 안타깝다. 거대 야당은 당대표의 범죄혐의를 대충 덮고 차기 대권을 움켜쥐기 위해 대통령 탄핵 확정과 조기 대선의 스케줄을 앞당기는 데 혈안이 돼 있고, 여당은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에 매몰돼 이 지긋지긋한 탄핵 정국을 최대한 길게 끄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상태로 경착륙이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지난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참사를 통해 지켜봤다. 랜딩기어가 없는 경제 경착륙은 비록 물리적인 인명피해를 초래하진 않겠지만 전 국민이 겪는 고통의 총량 면에서는 무안 참사보다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어떤 차기 대권주자가 참사 이후의 뒤처리를 잘 할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민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완충과 조정의 ‘랜딩기어’ 역할을 하는 인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