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광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2024-10-27

탄핵제도는 고위공직자가 직무수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따져 그 권한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의 규범력을 확보하는 제도다. 그중 대통령 탄핵은 다른 고위공직자 탄핵에 비해 다소 특수하다. 우선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한 다른 공직과 달리 막중한 지위, 지위의 안정성을 헌법이 보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심판은 그 자체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제도임에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원리를 감안할 때,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국민의 대표’ 의회가 탄핵하는 건 당연히 간단할 리 없다.

그런데 페루는 2016년 이래로 임시로 직을 승계한 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었거나 파면 직전 사임했다. 현 대통령도 지난 4월 탄핵소추되었으나 표결에서 부결되었다. 페루의 탄핵제도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탓도 있다. 탄핵소추권과 심판권이 모두 의회에 주어져 있고 탄핵 사유도 정치적 책임을 포함하여 다소 광범위하다. 이는 페루가 ‘탄핵의 함정’에 빠지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된다.

반면 학자들은 정치제도 측면에 주목하기도 한다. 대통령제와 비례대표제의 결합이 낳은 구조적 불안정성, 그에 따라 분점정부가 일상화되면서 의회와 대통령 간 교착상태는 국정난맥을 넘어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한다. 또 정당체제의 취약한 제도화 수준과 사당화도 중요하게 지적된다. 게다가 탄핵에 대한 심리적 장벽의 약화도 탄핵 급증과 무관하지 않다. 현 정부 시기 발의된 탄핵소추안이 18건에 이를 정도로 탄핵이 익숙해지고, 대통령-의회 간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는 우리에게 페루의 사례는 기우로만 그치지 않는다.

과거 미국의 건국자들 역시 탄핵제도에 내재한 정치적 성격을 우려한 바 있다. “탄핵소추는 전체 공동체의 정념을 불러일으키며, 공동체를 파당으로 분열시킬 것이 분명하다. (…) 모든 적대감과 편견, 영향력과 이해관계가 동원될 것이다. (…) 유무죄의 진정한 입증에 따라서가 아니라 파당들의 상대적 힘에 따라 판결이 좌우될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페더럴리스트 페이퍼스 65번 논설)고 경고한다. 탄핵의 파괴적 힘에 대한 민주주의자들의 근심이다.

최근 야권세력은 대통령 탄핵의 스모킹 건을 찾으려고 혈안이다. 한 정당은 이번 국정감사를 ‘스모킹 건 국감’이라 명명하며 상황실을 차리고 현판도 달았다. 사실 스모킹 건을 따로 찾을 것도 없이 연기가 자욱하다. 지지율에 따르면 시민들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2016년 광장이 재현되지 않는 건 스모킹 건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탄핵정국이 몰고 올 후과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어떤 감각의 발현 아닐까. 시민들은 지금 우리가 겪는 수많은 문제들이 탄핵만으로 해결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광장을 택하지 않고 숙고하며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사회운동은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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