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요리사들의 꿈은 미슐랭 가이드 스타를 받는 것이다. 한식의 매력에 빠져 15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택한 이탈리아인 셰프가 있다. 애칭 ‘파브리’로 불리는 파브리치오 페라리 셰프(44)다. 5일 호텔조리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한 페라리 셰프를 경기 안양에 있는 대림대학교에서 만났다.
페라리 셰프가 4살이던 1984년, 부모님은 밀라노에서 작은 항구라는 뜻을 지닌 해산물 레스토랑 ‘알 포르티촐로 84(Al Porticciolo 84)’를 개업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요리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기에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에서 재정법을 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어머니의 부탁으로 식당 일을 돕게 된다. 식당 일을 한 지 2년여가 지난 2005년, 그의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받았다.
“저와 어머니, 주방 보조 한분까지 3명이 운영하던 작은 식당이었어요. 20년 넘게 부모님께서 해온 일과 제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후 그는 보조 셰프를 구해 함께 일하기 시작했고 그중엔 한국인 셰프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처음 한식을 접한 페라리 셰프는 이전에 먹어본 다른 아시아 음식과는 전혀 다른 한식만의 특색 있는 맛에 깜짝 놀랐다. 특히 어느 음식에 들어가건 감칠맛을 살려주는 된장·고추장에 깊이 빠져 이를 활용한 음식을 개발해 판매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한식을 꾸준히 개발해온 페라리 셰프는 2016년 대한민국 정부가 밀라노에서 개최한 한식 요리 대회에 참가, 고등어 무조림을 선보여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2018년엔 전국 팔도의 고수와 외국인 셰프가 한팀을 이뤄 한식 대결을 펼치는 예능 프로그램 ‘한식대첩-고수외전’에 출연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엔 우송대학교 글로벌조리학과 교수직을 제안받아 홀로 한국에 왔다.
“2005년부터 한해도 놓치지 않고 계속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받았어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죠. 저는 창의적인 시도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쁜 반응을 얻을까 봐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것도 망설여졌고요. 한국에선 부담을 벗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식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라리 셰프가 한국으로 간 이후에도 가족과 보조 셰프가 알 포르티촐로를 지켰고, 그 결과 2020년까지 15년 연속 미슐랭 1스타에 선정될 수 있었다. 2021년, 마침내 그는 레스토랑 폐업을 결정하고 아내·딸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다. 이후 여러 방송과 유튜브 영상에 출연하며 외국인 셰프 시각에서 한식을 소개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음식도 알리고 있다. 최근엔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해 홍어 삼합을 이탈리아식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꼭 한식을 요리하고 싶었고, 홍어 하면 역시 삼합에 막걸리라고 생각했죠. 이탈리아식 베이컨인 ‘판체타’와 묵은지볶음, 튀긴 홍어를 함께 접시에 담고 막걸리로 만든 소스, 미나리 오일, 묵은지로 물들인 캐비아를 곁들여 ‘파인다이닝 홍어 삼합’을 선보였습니다. 흰색 막걸리 소스와 초록색 미나리 오일, 붉은 캐비아는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 것이죠. 대결에선 아쉽게 졌지만 요리엔 늘 자신 있어요.”
페라리 셰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 ‘세계김치연구소’가 지정한 김치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김치요리대회 심사위원을 맡고 외국인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김치 레시피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상으로 올린다. 그에게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 지 물었다.
“한식의 핵심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해요. 외국인에게 낯선 음식이라고 해서 근본을 없애고 맛을 지나치게 바꿔선 안됩니다. 이탈리아에는 없는 깻잎과 참기름 같은 이색적인 식재료가 오히려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오래도록 한국에 머물며 한식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겠습니다.”
안양=황지원 기자 suppor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