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와 결혼식의 풍경

2025-01-21

사랑에 관한 시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지만, 스님이면서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의 시 ‘사랑하는 까닭’은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 이 시에는 이러한 시구가 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홍안은 붉은 얼굴이라는 뜻이다. 혈색이 좋은 얼굴을 일컫고, 나이가 젊은 때의 얼굴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노래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혈기가 왕성하고 나이가 한창때의 모습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가 주름지고 머리카락이 희어지게 되는, 늙은 때의 모습도 좋아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그리고 기루어한다는 것은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 일이 많은 미소의 때만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슬프고 낙망할 일이 일어나는 눈물의 때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사랑은 눈물의 때도 함께 하는 것

“퇴근길 꽃 사기를” 축사 때 당부

풍속 바뀌었어도 흥겨운 잔치

자크 프레베르의 시 ‘공원’도 사랑을 노래한 시로서 매우 매혹적이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파리/ 파리의 몽수리 공원에서/ 겨울 햇빛 속 어느 아침/ 네가 내게 입맞춘/ 내가 너에게 입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다 말하려면/ 모자라리라/ 수백만 년 또 수백만 년도.” 이 시는 공원에서 입맞춤을 하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연인이 입맞춤을 하는 그 순간과 그 장소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 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고, 그 장소는 우주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만큼 사랑의 매 순간은 놀랍고 의미심장하다고 시인은 이 시를 통해 강조한 듯하다.

최근에 나는 결혼식장에서 축사를 했다. 축사를 통해 몇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집에 들어갈 때 꽃을 사서 갈 것을 권했다. 생화를 식탁과 거실에 놓아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는 지금 동백이 피었고, 수선화가 피었고, 곧 입춘이니 노오란 복수초가 필 텐데, 그리고 그 꽃들은 아주 이쁘지만, 제주의 꽃들을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의 식탁과 거실에 데려올 수 없고, 정원과 들판에 피는 꽃은 저대로 좋고, 식탁과 거실에 두는 꽃은 또 그것대로 아름다우니, 퇴근하는 길에 서로를 생각하며 꽃을 사서 집에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둘째, 근사한 옷을 한 벌씩 사서 옷장에 걸어둘 것을 부탁했다. 기쁜 날을 기다리며 그날에 입을 옷을 미리 사둔다면 마치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하루하루가 설레고 내일이 기다려질 것이라고 일렀다.

셋째, 가끔은 시장에 가서 함께 국밥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세상에는 마음씨가 선하고 푸근하고 정직하고, 무엇보다 삶을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따뜻한 한 그릇의 국밥을 내주는 분들을 통해, 그 뜨끈뜨끈한 국밥을 통해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넷째, 유머를 즐길 것을 제안했다. 가벼운 농담과 재치 있는 말은 멋진 스카프 같고 브로치 같아서 좋은 액세서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조용한 곳에 머물 것을 청했다. 물론 일상의 생활은 발랄한 곳에 있어야 하겠지만, 푸른 보리밭과 여름 과일과 아름다운 단풍과 하얀 눈이 내린 설원, 이러한 네 계절을 충분히 즐기되, 마음은 번잡한 곳을 떠나 조금은 한가하고 단순한 곳에 거처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은 뿌리와 같아서 우리의 삶을 보호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나로서도 하기 어렵고 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이 일들을 하나씩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차와 한 잔의 술을 즐기라는 말도 보탰다. 평범한 하루를 살았음에 감사하면서는 차를 마시고, 아주 기쁜 날에는 한 잔의 맛있는 술을 마셔도 좋겠다고 말했다.

축하객으로 결혼식에 가끔 가게 되는데, 요즘 결혼식의 풍경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예전에는 결혼식 날 축하객들이 드실 음식을 직접 준비하느라 온 동네 사람들이 여러 날에 걸쳐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아 썰고 반찬을 준비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동네에 혼사가 있는 집이 있으면 동네 전체가 잔칫집이 되었다. 주례도 존경하는 분으로 모셔서 그분이 살아온 삶의 지혜를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주례사를 대신해서 신랑이나 신부의 부모가 성혼선언문을 읽고 덕담과 축사를 하기도 한다.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식이 흥겨운 잔치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다. 사랑은 늘 경이롭고 사랑하는 이들을 신부의 부케처럼 아름답게 한다.

문태준 시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