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0.98%의 득표율로 4위에 그쳤다. 심상정 전 의원이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록한 한국 진보정당 최고 득표율(6.17%)은커녕 직전 대선인 2022년 대선에서 받은 2.37%에도 한참 모자란다. 그러나 권영국 후보 캠프는 이번 대선의 결과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한다. 득표율은 낮았지만, 지지층의 표심은 단순 ‘지지’ 이상이었고 평가했다.
권 후보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보낸 건 2030 여성이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진행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유권자의 5.9%가 권 후보에 투표했다. 전국 예상 득표율 (1.3%)의 4배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민주노동당에 따르면 3일 오후 8시부터 4일 오전 10시까지 권 후보의 후원계좌에는 13억4400만원 이상이 들어왔다.
권 후보는 여성·성소수자·노동자·환경 등 의제를 내세운 유일한 후보로 평가받는다. 지지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비동의 강간죄 제정 등 권 후보의 공약이 “내 삶과 구체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씨(26)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유일한 후보여서 뽑았다”며 “퀴어공동체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공약으로 내건 점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성소수자라고 밝힌 최모씨(25)는 “성소수자와 동성혼 법제화 등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정민지씨(28)는 “권 후보가 고공농성장에 가장 먼저 찾아가 유세한 것을 보고 소수자 의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라 느꼈다”며 “공약과 실천이 유리되지 않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사표’를 우려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했다. 권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한 표’였기 때문이다. 정씨는 “주변에서 ‘사표가 될 텐데 왜 뽑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지지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투표로라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에 준 표가 이번 대선 토론회에 권영국 후보가 출연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되는 등 실질적 결과로 이어졌다”며 “사표에 대한 망설임 없이 투표했다”고 말했다. 박모씨(25)는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를 막기 위해 이재명 후보를 찍었지만, 이번엔 (이재명 후보가) 확실히 당선될 거로 생각해 마음 놓고 소신 투표했다”고 했다.
조기대선의 주역인 2030 여성의 목소리를 경청한 건 권 후보뿐이었다고도 했다. 박씨는 “2030 여성들이 광장에서 외쳤던 건 여성의 생명이 안전한 사회, 성평등 의제가 당당히 서는 사회 등이었다”며 “그걸 선명하게 말한 사람은 권영국”이라고 했다.
이들은 “진보 정당이 포기하지 않고 소수자 목소리를 대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박씨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여성 유권자들도 포섭해 ‘진짜 정당 민주주의’를 할 수 있길 바란다”며 “소수자 스피커(대변자)를 키울 수 있는 정당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씨는 “기존 양당 체제에서 소외된 의제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앞으로 권 후보가 해줬으면 한다”며 “(권 후보가) 매스컴에 더 자주 등장해 사회 여러 분야와 접점을 넓히는 행보를 하길 바란다”고도 했다.
권 후보는 선거 직후 SNS에 “지지율 1% 남짓 나오는 후보가 아니고선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배제되고 밀려난 아픈 마음들의 의미를 잘 헤아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