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37·KIA)은 지난해까지 10시즌 연속 170이닝 이상씩을 던졌다. KBO리그의 유일한 기록이다.
미국에서 돌아온 2022년부터 3년 동안만 돌아봐도 양현종의 압도적인 이닝 소화력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양현종은 3년 간 리그 최다인 517.2이닝을 던졌다. 이 3년 간 500이닝을 던진 투수는 찰리 반즈(롯데·507.1이닝)와 김광현(SSG·504이닝)뿐이다. 당연히, KIA에는 비교 대상이 없다. 이 기간 KIA에는 300이닝을 소화한 투수도 양현종 외에 없다.
양현종이 투구 이닝을 줄이기로 한 2025년, 그 이닝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인지는 ‘디펜딩 챔피언’ KIA의 길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방향키다.
양현종이 10년째 기록을 채우자 이범호 KIA 감독은 투구 이닝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을 드러냈다. 양현종과도 논의했다.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에 다시 깨지기 어려울 기록을 완성한 이상, 양현종도 어느 정도 관리는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근래 들어, 구단들이 미래 에이스급으로 기대받는 젊은 선발 투수의 이닝을 제한하는 사례가 있다. 한 시즌 목표치를 정해놓고 그 이상은 등판시키지 않는 형태다. KIA가 계획하는 베테랑 양현종의 이닝 조절은 이같은 ‘제한’과는 거리가 있다. 당일 컨디션이 좋다면 얼마든 던지게 하지만 의무감에 6이닝 이상을 채우기 위해 애쓰지 않도록 교체 시기를 결정하고 시즌 중 필요할 때는 휴식도 주는 자연스러운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도, 양현종의 한 시즌 이닝을 제한할 수는 없다. 일단 양현종이 너무 건재하다. 지난해 우승 과정에서도 KIA 마운드에서 양현종이 차지한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개막을 함께 했던 선발 5명 중 양현종만 시즌 끝까지 소화했고 나머지 4명은 전부 부상으로 이탈했다. 171.1이닝을 던진 양현종 다음으로 많이 던진 투수는 제임스 네일(149.1이닝)이었다. 리그 특급 기록을 달리던 네일도 8월말 타구에 맞아 턱뼈가 골절돼 시즌을 마쳤듯 어떤 변수가 닥칠지 모르는 채로 국내 1선발에게 한계치를 정해놓을 수가 없다.
따져보면 올해 선발진 중에서도 양현종과 네일을 제외하면 ‘상수’로 계산할 수 있는 투수는 없다. 지난 3년간 양현종 다음으로 많이 던진 투수가 이의리(299이닝), 임기영(257이닝), 윤영철(204.1이닝)이다. 지금은 불펜 투수인 임기영을 제외하더라도 팔꿈치 수술 받은 이의리는 빠르면 6월 복귀하고 윤영철은 규정이닝을 던져본 적 없는 이제 데뷔 3년차다.
양현종이 10시즌 동안 쉬지 않고 170이닝씩 던진 것은 책임감 때문이었다. 30대 후반이 된 지금, 기록의 정점에도 도달했으니 좀 더 오래 선발 투수로 던질 수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이 이범호 감독의 이닝 조절 의도다. 그렇다면 양현종이 줄일 이닝의 몫은 누군가 나눠가져야 한다. 기존 불펜이 튼튼하다는 전제로, 양현종이 올해도 170이닝을 던지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선발 로테이션이 확실하게 돌아가야 한다.
KIA가 기대하는 새 투수 애덤 올러가 네일과 외인 원투펀치로 제대로 서주는 것이 필수다. KIA는 2020년 나란히 150이닝 이상 던지고 11승씩 거뒀던 가뇽-브룩스 이후 5년 만에 외인 원투펀치의 300이닝-20승 합작을 기대한다. 국내 선발 중에서는 이의리가 돌아오기 전까지, 윤영철이 축으로 활약해야 한다. 지난해 척추 피로골절로 이탈했던 윤영철이 데뷔 시즌(122.2이닝) 이상의 투구를 해주고 여름에 돌아오는 이의리가 후반기 본격적으로 가세해주면 KIA는 계획대로 휴식도 주며 양현종을 아낄 수 있다.
양현종은 미국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나며 “좋은 컨디션으로 등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따르겠다. 하지만 투구 이닝에 한계를 정해놓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현재 캠프에서는 기존 페이스대로 전체 투수 중 가장 천천히 투구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이닝 욕심이 많았던 양현종은 이제 조금 내려놓고 던질 준비를 한다. 다만 마음속으로는 최소 규정이닝(144이닝) 이상은 던져야 한다는 ‘마지노선’은 갖고 있다. 양현종이 규정이닝만 소화해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마운드야말로 KIA가 기대하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그 30이닝의 틈을 채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통합 2연패를 바라보는 올해 더욱 철저하게 마운드를 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