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직해병특별검사팀(특별검사 이명현)은 지난 달 11일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아이폰 1대를 확보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팀이 요청한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에 협조하지 않았다. 결국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아이폰을 확보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으나 여전히 잠금 해제 등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과 같이 피의자들이 아이폰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애플의 강력한 보안 기술이 수사의 결정적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다. 휴대전화는 피의자의 대화·동선 등이 담겨 수사 과정에서 핵심 증거로 여겨진다. 하지만 보안 기술의 발달과 피의자의 비협조가 겹치면서 사정 당국의 수사 차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강요미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했고, 포렌식 작업이 무산됐다. 당시 검찰은 “현 기술로는 잠금 해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수 김호중 씨가 음주 뺑소니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에도 아이폰 3대의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아 수사가 지연됐다. 결국 일부 기기에만 비밀번호를 제공하면서 제한적인 포렌식이 이뤄졌다.
문제는 아이폰의 모바일 운영체제(iOS)가 매년 업그레이드 되는 등 보안 수준이 강화되면서 수사 기관이 디지털 포렌식으로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폰의 보안 체계는 숫자 뿐 아니라 영·숫자 조합, 지문·얼굴 인식 등 다양한 인증 방식이 적용돼 있고, 이른바 ‘이중 잠금’ 기능도 사용할 수 있다. 비밀번호는 이론적으로 약 560억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일정 횟수 이상 입력에 실패하면 일정 시간 동안 사용이 제한되거나 설정에 따라 저장된 데이터가 자동으로 삭제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iOS에는 ‘종단간 암호화(E2EE·End-to-End Encryption)’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는 메시지나 데이터를 송신자와 수신자만 열람할 수 있도록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본인 인증 없이 다른 기기로 데이터를 옮기더라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한다. 암호 해제 키는 해당 기기 내부에만 저장되며, 애플조차 사용자 기기나 클라우드에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다.
검찰 관계자는 “아이폰은 기기 모델과 설치된 iOS 버전에 따라 포렌식 도구의 성공률에 큰 차이가 있다”며 “이스라엘 정보기술 업체인 셀레브라이트를 사용해도 지난해 3월 출시된 iOS 17.4 버전부터는 보안이 더욱 강화돼 사실상 잠금 해제나 데이터 추출이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갤럭시 스마트폰도 보안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접근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에서는 피의자가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더라도 별다른 법적 제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0년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비밀번호 제공 거부 시 처벌한다는 내용의 ‘한동훈 방지법’을 검토했지만 무산산 된 바 있다. 영국의 경우 2000년 제정된 정보규제수사권한법(RIPA)에 따라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면 최대 5년의 징역형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