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여당이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에 사활을 걸고 나선 가운데 서울 서리풀지구의 공공주택 개발사업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임 윤석열 정부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선언했고 이재명 정부도 바통을 이어받아 내년 1월로 앞당겨 지구 지정을 추진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서다. 현 정부·여당이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가 그린벨트 해제도 검토하는 가운데 향후 이같은 논란이 반복될 우려가 제기된다. 신속한 주택 공급이 중요하지만 주민 반발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제수용’이라는 ‘날벼락’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일 서리풀지구를 직접 방문해 내년 3월을 목표로 진행하던 공공주택 지구지정을 “1월로 앞당겨 추진하라”고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서울 마지막 ‘금싸라기땅’으로 불려온 서리풀지구 개발을 대다수 토지 소유주가 환영한다. 1970년대부터 그린벨트로 묶여 재산권에 제약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호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곳도 있다. 25년 된 성당과 오랜 역사를 이어온 작은 마을이다. 서리풀2지구의 우면동성당과 식유촌·송동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빼고 사업을 추진하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성당에서 만난 백운철 신부는 지난해 11월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지난해 8월 8일 윤석열 정부에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한다고 발표한 여름에만 해도 성당과 관련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지난해 11월 5일 이후였다. 당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서리풀지구에 공공주택 2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다음날 사람들이 성당이 강제수용된다며 달려왔다. 백 신부는 서초구청에 가서 확인해보니 우면동 성당과 인접한 식유촌·송동마을이 ‘서리풀 2지구’로 개발 대상 지역에 포함돼 있다는 걸 알았다.
정부는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서리풀지구(221만㎡)에 주택 2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만1000가구(55%)는 ‘신혼부부용 장기전세주택Ⅱ’로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소유한 토지를 강제 수용해 공공택지를 조성하게 된다. 이 계획대로라면 성당도 철거 대상이다.

서리풀지구는 1지구와 2지구로 나뉘어 있다. 서초구 원지·신원·염곡·내곡동에 걸쳐있는 1지구가 전체 면적의 약 91%(201만㎡)에 해당하고, 우면동 일원의 2지구(19만㎡)는 9% 정도다. 정부는 1지구에 주택 1만8000가구를, 2지구에 2000가구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청계산 인근에 위치한 1지구와 우면산 자락에 위치한 2지구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농지가 대부분인 1지구에선 개발을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지난달 1일 국토부가 개최한 환경영향평가 설명회에도 1지구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반면 같은 날 2지구 주민을 대상으로 열린 설명회는 주민들의 불참 선언으로 무산됐다.
우면동 성당의 신도 4000여명을 포함한 천주교 12지구 신자 9300여명과 사제 26명은 설명회 당일 참석을 거부하고 강제 수용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래 세대에게 삶의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개발 계획의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선한 의지’의 구현이 종교 공동체와 주민들의 소중한 집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믿는다.”
성당뿐만 아니라 식유촌·송동마을 주민들도 한목소리로 강제수용에 반대하고 있다. 우면산 남쪽 자락의 송동마을(2만㎡)과 식유촌(1만6000㎡)에는 각각 약 37가구가 살고 있다. 다수 주민이 이씨·송씨·최씨 등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산다. 1971년에 그린벨트로 묶이고 1980년대 집단취락지구로 지정돼 함부로 기반시설을 늘리거나 건물을 증축할 수 없어 대부분이 저층의 단독주택이다.
이곳 주민들은 환경적·역사적 가치가 풍부한 우면산 자락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맹꽁이와 비오톱 등 보전 가치가 있는 생물 종이 서식해 환경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오랜 마을이라 문화재 출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양형석 서리풀2지구 송동마을 대책위 간사는 “송동마을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붙여져 현재까지 내려왔고, 항토사적 12호인 단종 장인·장모 묘도 위치한 등 문화적 가치가 풍부한 마을”이라며 “오랜 시간 공동체를 유지해온 송동마을과 식유촌은 보상 아닌 존치를 원하고 있고, 면적도 서리풀 전체 지구의 1.9%에 불과한 만큼 여기를 제외하고 개발을 진행하는 편이 훨씬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협의로 대안 도출하는 능력 보여야”

서울 도심 주택 공급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 이미 발표한 서리풀지구는 정부의 주택 공급 의지 가늠자로도 불린다. 정책 신뢰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정부는 일단 지구를 지정하고 나서 향후 주민들 의견을 반영할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서리풀지구에서 2029년 삽을 떠 2031년에는 입주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최대한 빨리 공공주택지구를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를 개발 대상에 포함할지 정하는 ‘선 긋기’는 다음 단계인 지구계획 단계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고, 특정 지역의 보상 또는 제척(택지지구에서 뺌), 존치(지구에 넣되 원형 보존)에 대해서 논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2027년 말까지 토지이용계획을 결정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지구 지정 이후 주민 의견을 최대한 검토해 존치 여부 등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불안한 상황이지만 일단 지구 지정을 한 뒤, 의견 수렴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같은 이슈가 서리풀지구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기 위해 서울의 또다른 그린벨트를 추가로 풀지도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노원구 태릉골프장과 육군사관학교 부지 등의 그린벨트를 풀려다가 주민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정부가 주택 공급에 대한 상세한 목표를 내놓고 계획에 따라 실현해야 9·7 공급대책에서 발표한 135만가구 공급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라며 “그린벨트 해제는 앞으로도 갈등과 논란의 소지의 여지가 큰 개발 방식인 만큼 협의를 통해 대안을 도출하는 정부의 행정적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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