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음미미음]빛과 어둠의 시, 고예스카스 <아트씽>

2025-10-11

2022년 9월,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아카데미(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79)의 공연이 있었다. 그가 연주한 곡은 카탈루냐 출신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1867~1916)의 ‘고예스카스(Goyescas·1911)’. 이 음악은 그라나도스가 화가 프란시스 고야(1746~1828)를 오마주해 작곡한 곡으로 ‘고야의 화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건우는 15세때 이 곡과 만났다. 그는 그라나도스의 제자이자 스페인 피아니스트 거장인 알리시아 데 라로차(1923~2009)가 연주하는 고예스카스를 처음 듣는 순간을 “햇볕이 든 것처럼 따뜻했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반 세기가 훌쩍 지나고 나서야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고예스카스’를 무대에 올리게 됐다. 백건우는 고야가 한때 몸 담았던 바로 그 현장에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한 뒤 연주를 하게 된 벅찬 감동을 소회했다. 더욱이 이곳은 ‘고예스카스’의 직접적인 영감이 된 고야의 작품들이 숨 쉬고 있는 곳이 아닌가.

그라나도스는 고야의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2년간 파리에서 공부한 뒤 바르셀로나에 살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기 때문에 고야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화가를 흠모하게 됐다. ‘고예스카스’는 고야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작곡돼 1912년에 여섯 개의 모음곡이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 1권에는 제1곡 ‘사랑의 속삭임(Los requiebors)’, 제2곡 ‘창가의 대화(Coloquio em la reja)’, 제3곡 ‘등불 옆의 판당고 (El fandango de candil)’, 제4곡 ‘비탄, 또는 마하와 밤 꾀꼬리(Quejas, o La Maja y el ruisenor)’가, 2권에는 제5곡 ‘사랑과 죽음(El Amor y la muerte)’, 제6곡 ‘에필로그: 유령의 세레나데(Epilogo: Serenata del espectro)’가 포함돼 있었고, 훗날 제7곡으로 ‘지푸라기 인형(El Pelele)’이 추가됐다. 이 곡들은 모두 고야의 작품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회화적 연상이 가능한데, 특히 고야의 판화집이 큰 영향을 미쳤다.

고야는 1799년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라는 82점의 판화가 담긴 작품집을 발표했다. 이 판화집은 악습과 무지로 부패했던 당시 스페인 사회를 풍자하려는 의도로 제작됐다. 특히 미신을 숭배하는 풍조를 드러내며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카툰의 시초로 언급되기도 하는 이 판화집에서 화가는 당대 만연했던 편견과 기만함을 비판하고자 했다.

초창기에는 스페인 궁정화가로 로코코 풍의 초상화를 그렸던 고야가 이처럼 현실적인 사회 풍자화를 그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780년 만장일치로 왕립 아카데미에 선출됐고, 1789년 카를로스 4세 즉위 이후에는 왕실 초상화가가 되어 평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그가 말이다.고야는 1792년 콜레라를 심하게 앓고 나서 청각을 상실했다. 그 후 수년간 투병하면서 소음으로 고통받으며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됐다. 이 무렵 환상적인 악몽을 표현하게 된 것도 신체적 고통에서 기인한다. 그는 육체적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며 정신적으로도 암흑 속으로 침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혁명을 접하고 계몽주의 철학 책들을 탐독하면서 생각의 빛과 조우하게 된다. 작풍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 시기이며 말년의 검은색 바탕과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상, 그리고 우울한 주제 등을 나타내는 거칠고 무거운 고야 만의 ‘검은 그림’으로 향하는 기점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암울한 고야의 그림에서 그라나도스는 스페인적 색채 가득한 악상을 착안해 냈다. 작곡가는 ‘고예스카스’에 관하여 “슬픔과 우아함이 뒤섞여 있고, 둘은 어떤 우위도 없으며 시적인 분위기 속에서 표현될 뿐이다.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음이, 곧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음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고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들이기도 하다.”라고 남겼다.

그라나도스는 파리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유서 깊은 공연장인 살 플레이엘(Salle Pleyel)에서 ‘고예스카스’를 연주하여 큰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로 인해 훈장 수여와 함께 오페라 개작 제안을 받아 동명의 2막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다. 이 작품은 피아노 곡의 마지막에 추가된 ‘지푸라기 인형’ 장면에서 시작되고 ‘알바 공작부인’ 초상화 등 고야 회화들을 모티브로 한 여러 장면들의 연출을 통해 사랑의 비극을 담아내고 있다.

오페라 ‘고예스카스’는 원래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하려고 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첫 공연이 이루어졌다. 그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1916년 1월 초연을 위해 여섯 명의 아이들을 바르셀로나에 남겨두고 부인과 함께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오페라는 대 성공을 거두었고 간주곡을 포함하여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화이트하우스 연주 초청을 받았고 미국 체류를 연장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한 음악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3월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향하는 배편에 오른 그라나도스 부부는 기쁨의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비극과 대면한다. 그들이 탄 배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한순간에 거친 파도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결국 ‘고예스카스’의 끝없는 탄식의 선율은 죽음이 봉인한 생의 후광으로 남게 되었다.

백건우의 공연은 한 달 후 서울에서도 열렸다. 그는 40여년을 열망했던, 극도로 기교적이며 다채롭고 화려한 ‘고예스카스’가 자신에게는 음악적 자유를 의미하는 곡이라고 했다. 진정 ‘고예스카스’는 따뜻하고 찬란하게 대지에 뿌려지는 햇살과도 같은 음색을 품고 있었다.

그라나도스는 고야가 어둠 속에서 만났던 빛의 진실을 보았던 것일까. 화가가 다가가고자 했던 섬세하고도 역동적인 감정이란 존재를. 고통을 겪어낸 사랑과 행복, 그리고 자유를. 그 안에서는 극명한 음영의 삶을 부여 받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숨처럼 자유롭기만 하다.

▶▶필자 김보라는 성북구립미술관 관장이다. 서울시미술관협의회 회장이며 ICOM 한국위원회와 (재)내셔널트러스트의 이사이고,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진흥정책 심의위원 등을 맡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고, 경기도미술관에 근무하며 건립 TF 및 학예연구사로 일했다. 국내외 전시기획과 공립미술관 행정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다. 2009년 자치구 최초로 개관한 성북구립미술관의 학예실장을 거쳐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관장을 맡고 있다. 윤중식·서세옥·송영수 등 지역 원로작가의 소장품을 확보해 문화예술 자산에 대한 연구 기반을 확장했고 예술가의 가옥 보존과 연구를 기반으로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을 개관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박물관 및 미술관 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