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CES 볼거리와 혁신 딜레마

2025-01-23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에 참가하는 대기업의 딜레마는 무엇일까.

CES는 국제전자제품전시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질적으로 최신 전자제품을 선보이는 행사로 출발했다. 일본 소니가 1970~1980년대 CES에서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과 CD플레이어를 처음 선보이면서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서 CES는 가전제품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혁신적인 기술을 전시하는 장으로 확장됐고, 매년 CES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어느새 전 세계 IT 기업의 축제이자 경쟁의 장이 됐다.

하지만 CES 참석이 마냥 달갑지 않은 기업들도 많다. 특히 참가기업 중 삼성전자나 일본의 소니 같은 글로벌 기업은 볼거리와 혁신 제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CES는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시회다. 하지만 최근 혁신적인 기술 트렌드는 가전제품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공지능(AI)과 같은 소프트웨어의 영역이다. 이 때문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여지게’ 만들어야 하는 형용모순(形容矛盾)에 빠진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CES에서 삼성전자는 가전제품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삼성전자는 집안 내 모든 가전을 AI를 통해 하나로 연결한 ‘홈 AI’ 기술을 선보였다.

전시관에서 본 홈 AI는 흥미롭고,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직접 보지 못하고 글을 통해 접하는 소비자들은 얼마나 추상적으로 느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LG전자 역시 삼성전자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LG전자의 경우 이번 CES에서 볼거리와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전시관 입구에 LG전자가 자랑하는 OLED 패널들로 제작한 조형물인 ‘키네틱’을 전시해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반면 중국 기업과 같은 후발주자들은 대체적으로 가전제품을 전면으로 내세워 압도적인 볼거리로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중국의 TCL이나 하이센스만 해도 100인치가 넘는 초대형 TV를 전시한다거나, 다양한 게이밍 장비를 선보였다.

중국 기업처럼 자사의 가전제품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건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화려함이 주는 쾌감도 있고,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만 갖춰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일본의 소니 같은 글로벌 선두기업은 볼거리보다 혁신적인 기술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이 자사 가전제품으로 볼거리에만 집중하면 ‘혁신의 부재’라는 지적이 따라오며, 후발주자와 비교 대상밖에 되지 않게 된다.

이 때문에 CES 참가기업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정작 글로벌 IT 기업은 CES에 힘을 쏟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해에도 CES 참여기업의 약 90%는 한국과 미국, 중국 기업으로 편중됐다. 게다가 상당수는 기업 홍보 목적으로 참가에만 의의를 두기도 한다. 해가 갈수록 CES가 혁신이 귀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범수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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