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천천히 받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요”

2025-01-23

공공운수노조서 초대 마음 나눠

“재미보다는 내 목소리 담고 싶어

소비자 욕구라지만 기업 위한 것

법·제도로 규제되게 노력해주길”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 눈길을 끄는 깃발이 등장했다. ‘주 7일 배송이 필요 없는 소비자모임.’ 모임 이름 아래엔 ‘천천히 받는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구도 적혀 있었다.

배달라이더 출신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반가운 마음에 기수 정다울씨(31)를 찾아가 “공공운수노조에 운수 노동자들이 많으니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명함을 건넸다. 이틀 뒤 정씨는 깃발 사진이 X(옛 트위터)에서 많이 공유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런 흐름이 노동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후 박 부위원장 초대를 받은 정씨는 지난 22일 서울 등촌동 공공운수노조 2층 모아홀에서 열린 집담회에 참석했다. 집담회에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화물노동자 등도 함께 자리했다.

정씨는 어떻게 ‘주 7일 배송이 필요 없는 소비자모임’ 깃발을 만들게 됐을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응원봉을 들고 꾸준히 집회에 나간 정씨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되지 않는 등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심적으로 지쳤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자는 생각에 깃발을 만들기로 했다. 정씨는 “당시 쿠팡에 이어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을 시작할 때였다”며 “단순히 재미보다는 내 목소리가 담긴 깃발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쿠팡 불매’를 해온 정씨가 주 7일 배송에 문제의식을 느낀 건 자신의 일 때문이기도 하다. 정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케팅부터 고객 응대까지 고객 경험을 담당하는 CX 매니저로 일하면서 택배 등 물류 시스템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는 “중간에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물류 터미널에서 분류가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며 “나의 편리함이 노동자 권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택배가 늦어지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아쉬움이 아닐까”라고 했다. 예를 들어 주문한 옷이 늦게 도착하면 빨리 입고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불편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씨는 소비자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365일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빠른 배송이 이뤄지는 시스템이 정말 시민들이 원하는 것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주 7일 배송이 소비자 니즈(Needs·욕구)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업이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담회에 참석한 이준서 화물연대 부위원장은 2022년 말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가 사라진 뒤 운임 하락으로 화물노동자 삶은 더 팍팍해졌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경기 불황으로 일감도 줄고 서로 덤핑을 하다보니 몇푼이라도 아끼려고 고속도로 통행료가 싼 야간에 운송을 한다”고 말했다. 깃발을 보고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는 쿠팡 물류센터 해고노동자 최효씨는 “병들고 다치는 현장인데도 임금 때문에 야간노동을 놓지 못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두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정씨는 “운임이나 임금이 높아지면 부담이 늘겠지만 소비자들이 생각을 바꿔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씨가 노조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주 7일 배송이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법·제도로 규제할 수 있도록 노조가 노력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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