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백끼
홍콩에서 깨진 편견 중에 가장 극적인 편견은 미쉐린 별점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 미쉐린 별점은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동의어처럼 구사되는데, 홍콩에서는 적용 범위가 훨씬 크고 넓었다. 서양 입맛 따위는 개의치 않고 전통 식재료와 레시피만 고집하는 정통 광둥 요리집 중에도 미쉐린 별을 걸고 장사하는 식당이 여러 곳이었다. 처음에는 편견이 깨져 좋다고 생각했으나, 생각하면 할수록 의심이 들었다. 혹시 미쉐린 가이드는 홍콩에만 너그러운 것이 아닐까.
홍콩백끼의 의심은 단순한 팩트에서 비롯한다. 홍콩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중에 1만원짜리 밥집이 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주 특별한 한 집만 별을 받았다면 그만한 사연이 있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홍콩에는 1만원대 바비큐집, 1만원대 국숫집, 1만원대 선짓집이 미쉐린 별을 달고 장사한다(환율이 올라 그렇지 얼마 전까지도 1만원이 안 됐다). 다시 양보해서, 운이 좋아 한 번은 받을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이 낡고 허름하고 지저분한 소위 미쉐린 스타 식당(아, 레스토랑이라고 도저히 못 쓰겠다)들은 기본으로 10년씩 별을 달고 산다.
지난주 홍콩백끼는 광둥 요리가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경지를 선보였다. 미쉐린 가이드가 극찬해 마지않는, 광둥 요리로 연출한 최고급 파인 다이닝의 세계를 경험했다. 오늘은 정반대다. 홍콩 서민의 흔하고 헐한 밥상이 등장한다. 완탄민(雲呑麵‧완탕면)·콘지(粥‧죽)·씨우메이(燒味·광둥식 바비큐 요리) 따위를 뚝딱 올리는 값싸고 허름한 동네 밥집이 나온다. 홍콩백끼가 이전에 소개했던 골목 식당과 오늘 출연하는 골목 식당의 차이점은 하나다. 오늘 나오는 골목 식당에는 별이 달렸다. 미쉐린 가이드가 인정한 별. 2만8000곳이 넘는다는 홍콩 식당 가운데 78곳만 누린다는 명가의 자부심.
오늘 홍콩백끼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부러움으로 시작한다. 우리네 노포도 홍콩 노포 못지않게 역사와 전통이 있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네 칼국숫집, 순댓국집, 김치찌개집도 별을 거는 날을 기약하며 홍콩의 미쉐린 스타 골목 식당을 소개한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부러움을 빼고 말하면, 1만원으로 누리는 일생의 밥상을 경험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