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서정으로 현실을 감싸안다”…최서정 시집 ‘그 저녁이 너의 속눈썹에 갇힐 때’ 출간

2025-06-25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주목받은 최서정 시인이 첫 번째 시집 ‘그 저녁이 너의 속눈썹에 갇힐 때(현대시학사·1만2,000원)’를 펴냈다. 생의 비루함과 시적 상상력의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이 시집은 시인이 품은 언어의 저력을 절묘하게 증명해낸다.

 최 시인의 시는 단순한 서정의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절벽과 고시원, 목욕탕과 폐주유소, 침몰한 배와 버려진 도시의 폐허까지 그가 불러낸 장소들은 현실의 가장 아픈 결들을 닮았다. 그는 그 위에 곧게 펼쳐진 언어의 지문으로 세계를 읽고 기록한다.  

 예컨대 ‘무거운 악수’에서는 채석강의 절벽을 유장한 은유의 물결로 쓰다듬고 있다. “수천 년 쌓인 소리의 층” 속에서 “절벽이 안고 있는 주름”이 “해와 별의 지문”임을 발견하는 찬란한 시적 인식에 이른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그 저녁이 너의 속눈썹에 갇힐 때’는 시 전체에 걸쳐 저녁이라는 시간성과 속눈썹이라는 감각적 이미지로 감정과 기억의 지평을 확장한다. ‘봄, 비 올라 비올라’와 같은 작품에서는 목욕탕의 샤워기, 때밀이 타월, 악기 비올라 등 도시적 소재와 서정적 장면이 흡입력 있게 병치되며, 상처를 감싸 안고 노래하는 여성적 감수성의 결을 짙게 드러낸다.

 시인은 사회적 참사와 일상의 고통도 외면하지 않는다. ‘전자동 죽음’과 ‘옆집과 옆집의 옆집과 옆집’ 같은 시편에서는 폐유 탱크 화재, 배 침몰 사고 등 구체적 재난을 시적 언어로 복원하면서, 너무 쉽게 망각하는 이름 없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밤비와 치통’에서 “죽음이 사는 고시원 옥상은 어떤 국어기출문제보다 비유체계가 탄탄했다”는 구절은 비극조차 언어의 미학으로 돌파하려는 시인의 치열한 태도를 웅변한다.

 강연호 원광대 교수는 “최서정의 시는 첫 발자국으로서의 설렘보다 그 발자국을 낳은 뒤축의 모양새에 주목할 때 그 진면모가 드러난다. 특히 현실의 남루를 그려내며 동시에 그 남루를 넘어서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저녁의 서정으로 집중하여 표출한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은유의 힘, 생태와 환경에 집중하는 모성의 힘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시집”이라 평했다.

 최 시인의 작품은 세상의 뒤태와 상처를 끌어안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아픈 세계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어두운 저녁에 불을 켜는 시집. 시인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하지만, 그만큼 진실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너보다 더 많은 너’가 되어 오래된 벼랑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용기를 배운다. 잠시 멈추어 삶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을 때, 이 책은 조용히 곁에 머물러 줄 터다.

 최 시인은 전북 임실 출생으로 전주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04년 ‘시안’, 202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문학뉴스&시산맥’기후환경문학상을 수상했고, 2025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지원금을 수혜 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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