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 동반자 ‘건설업’… 대한민국 역사를 짓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2025-04-30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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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후 복구사업 주도하며... 1950년대부터 ‘황금기’ 시작 경기·인천 건설업 ‘본격 태동’

대한민국 근간(根幹) 산업인 건설업은 광복 이후 지역 발전을 넘어 국가적 발전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80년 전 광복의 울림이 전국을 뒤흔든 순간부터 현재까지 건설업은 인력을 확충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꾸준히 지역경제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으로 칠흑 같은 어둠을 맞았던 대한민국은 무너진 집을 들어 올리고, 전쟁 잔해가 가득한 길을 닦으며 광복 이후 80년의 세월 동안 눈이 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 경인지역 건설업, 전쟁 폐허 대한민국에 생명을 불어넣다

대한민국 건설업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한 경제개발 계획과 함께 시작됐다. 광복 직후 국내 건설업체는 61개에 불과했다. 대한민국 전후 복구 사업이 진행된 195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건설업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경기·인천 지역에서도 이때부터 건설업이 태동했다. 1960년 협화실업을 시작으로 과천에 터를 잡은 코오롱글로벌(건설)과 1975년 대창기업, 1982년 서희건설, 1987년 케이알산업 등이 경기도에 뿌리를 내렸다. 인천에서는 1951년 동화이앤씨(동화공사)를 시작으로, 1985년 디에이건설, 1990년 두손건설, 1993년 영동건설 등이 인천 건설업을 이끌었다.

이들 건설사는 80년의 역사 속에서 호황기와 침체기를 무수히 겪어야 했다. 1970년대 해외 수주를 통해 글로벌 건설사로 성장해 나가던 기업들은 1990년 말 수주 가뭄에 부딪혀 경영난을 겪었고, 2000년 초 아파트 건설 붐으로 밤낮없이 건물을 지어 올리다가도 글로벌 외환위기에 속수무책으로 스러지기도 했다.

이후 신도시 개발, 지역 균형 발전 사업 등으로 호황을 맞았던 건설업계는 최근 내수 악화에 직격탄을 맞아 위기를 겪고 있다.

이처럼 성장과 좌절을 반복한 건설업계는 80년이 흐른 현재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산업군으로 자리매김했다.

건설업계는 지난 2023년 말 기준 전국 전체 사업체(623만8천580개) 6곳 중 1곳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며 우리나라 내수를 책임지고 경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경기인천지역에서는 건설사업체 14만2천667개, 근로자 48만8천962명이 지역 건설업계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는 전국 건설사업체(49만7천848개)의 28.6%, 근로자(192만3천114명)의 25.4%에 달한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광복 이후 80년의 세월 동안 건설업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좌절을 맛보며 탄탄한 성장을 해왔다”면서 “건설업계는 대한민국 재건 역사와 함께 걸어온 동반자로서 앞으로의 역사도 함께 써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 개척의 기회를 잡다…기회의 땅 경기도에 자리잡은 ‘코오롱글로벌’

광복 이후 강산이 8번 바뀌는 동안 건설업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경기·인천지역에 한정해도 마찬가지다.

한 때 서울에 집중됐던 건설업계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경인지역 업체들은 강인한 정신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는데, 그 첫 출발의 신호를 쏘아 올린 기업이 바로 코오롱글로벌이다.

‘수도 중심’으로 삽을 떠왔던 건설업계가 코오롱글로벌을 토대로 ‘경인권’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지역경제 내에서 이들이 갖는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건설, 상사, 스포츠 산업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종합사업 코오롱글로벌의 역사는 1950년대로 올라간다.

먼저 상사로 포문을 연 코오롱그룹의 시발점은 광복 직후 발을 뗀다. 코오롱 창업주인 이원만씨는 1930년대 해방 전 일본 오사카에서 모자 제조업체를 운영했다. 이후 일본에서 굵직한 방직사업자가 된 뒤 1953년께 대한민국에 나일론을 독점 공급하면서 이듬해 나일론 유통업체인 개명상사를 건립했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공급되던 나일론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발판으로 그 규모를 키워 나갔다. 이후 사업 다각화를 위해 여러 사업군에 뛰어 들었고 그 일환으로 1960년 협화실업을 인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에 동참하기로 했다. 10여년을 협화실업 명으로 운영해왔던 건설부문 업무들은 그룹사의 의미를 한층 더 담아 1978년 상사부문이었던 개명상사의 새 상호인 코오롱(KOLON, 한국(KOREA)과 나일론(NYLON)의 의미)으로 통일됐다.

경부고속도로, 호남선 복합공사 수행 등 성공적인 사업 수행으로 건설업계에서 차츰차츰 입지를 넓혀 나간 코오롱종합건설은 1982년 코오롱건설주식회사로 상호를 바꿨다. 이후 1985년 산업포장, 1987년 산업훈장까지 받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특히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스포츠시설 공사까지 도맡으며 꾸준한 사업 수주로 입지를 확보해 나갔다. ‘잘 나가던’ 코오롱건설주식회사는 1997년 돌연 본거지이던 서울 무교동을 떠나 과천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다수의 기업이 강남에 자리를 잡던 시기였고 30대 그룹이 서울에 위치해 있던 상황에서 코오롱의 파격적인 본사 이동은 업계의 큰 관심과 호기심을 샀다.

코오롱건설이 과천 별양동 정부과천청사 근처에 새 터를 잡게 된 이유는 ‘경기도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코오롱의 이사는 경기지역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지역 건설사업을 수주하며 지역 건설업계 및 노동시장에 열기를 불어넣었고 지역 건설계의 총체적 발전 및 안정화를 도모했다.

2010년, 밀레니엄시대에 접어들며 신도시 붐이 일자 코오롱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고양 일산, 성남 분당, 서울 등지에서 아파트를 시공하며 주택 건설에 힘을 실었고 현재 코오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브랜드인 ‘하늘채’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1년, 건설을 필두로 여러 사업체가 종합된 대형 종합법인 코오롱글로벌 출범하면서 기술력은 더욱 향상됐다. 코오롱글로벌은 친환경 주택 건설 기술과 신자재를 개발하고, 트렌드를 분석해 유행을 선도하는 건설업체로 우뚝 서게 됐다.

인천 송도에 자리 잡고 있던 코오롱글로벌 직원 3천여명 또한 과천으로 이동하면서 흩어져 있던 코오롱그룹사가 한곳에 모이게 됐고, 지역사회에서 코오롱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코오롱글로벌의 화려한 질주

경기·인천권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현재의 코오롱글로벌은 주택 개발사업, 모듈러 주택 등으로의 영역 확장을 통해 미래성장동력을 강화하고 풍력발전, 수소에너지, 수처리 등 친환경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며 건설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의 건설 부문은 긴 역사를 기반으로 건축, 토목, 주택, 신재생에너지, 환경, 플랜트, SOC 등 분야별 최고 수준의 인재와 기술 역량을 보유했다. 1978년 사우디아라비아(주베일) 하우징 수주 공사를 시작으로, 1984년 아라즈지역 주택단지 공사, 2007년 스리랑카 마하나마 교량 공사, 2013년 가나(아프티카) 상수도 공사 등 건설과 토목 분야에서 위상을 떨쳐 온 코오롱글로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당사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성공의 발걸음을 걸어왔다. 임직원들의 열정과 노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모든 것에 한계 없이 도전하고 창의적인 혁신으로 무한한 시너지를 창출해 나가겠다”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며 앞으로도 성장하는 코오롱글로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 수도권에서 태동한 건설업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조금은 외면받던 경기·인천 안에서 코오롱글로벌 같은 기업의 성장은 지역 건설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광복 직후 61개에 불과했던 국내 건설업체 수가 지난 80년간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궤적과 함께 돋보이는 확장세를 이뤄냈다. 특히 수도권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지닌 경기도와 인천이 건설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며 지역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도맡게 됐다.

1950년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국가 재건에 나서던 시기, 경기도의 건설업은 사회기반시설 확충의 핵심 축이었다.

통계청 통계연감에 따르면 1959년 경기도는 해안 건설에 당시 화폐 단위로 2천142만환을 투자해 경남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했다. 당시 전국에서 해안 건설비가 집계된 곳은 경기도를 포함해 경남(10만2천54만환), 경북(300만환), 충남(287만환) 단 4개 지역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경기도의 해안 건설은 서해안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지표다.

도로 및 교량 건설도 속도를 냈다. 1958년 경기도의 국도 신설 연장은 3만9천844m로 전국 최다를 기록했으며, 교량 신설은 1959년 22m에서 1960년 1천69m로 1년 사이 48.59배 급증했다. 이러한 기반 시설 확장은 수도권의 산업기지화와 도시 확장을 뒷받침했다.

건설업 종사자 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1951년 경기도 내 건설업 종사자는 2만190명, 사업체 수는 467개였으며, 1960년에는 각각 2만5천418명, 680개로 늘어났다. 당시 인천은 경기도에 포함돼 있었으며, 수도권 전체가 건설업 성장의 거점 역할을 했다.

수도권 발전이 본격화된 1990년대 이후, 경기도와 인천의 건설업은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1993년 경기도의 건설업체 수는 7천607개, 종사자는 7만247명이었고, 인천은 2천81개 업체에 1만6천321명이 종사하고 있었다.

이후 2020년에는 경기도가 3만5천74개 업체, 종사자 26만4천745명으로 각각 약 4.61배와 약 3.65배 증가했고, 인천도 7천205개 업체에 5만8천179명이 근무하며 수도권이 건설업 고용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두 지역의 종사자 수는 전국의 22.6%를 차지, 산업 규모뿐 아니라 일자리 측면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나타냈다.

특히 경기도는 1999년 종합건설업체 수에서 전국 1위를 기록한 이후, 2023년 기준 2천597개 업체로 선두를 24년째 유지하고 있으며, 인천도 같은 해 803개로 전국 5위에 오르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 수도권에서 꽃 피운 건설업…이제는 ‘사람 중심 혁신’으로

건설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뚜렷하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지역소득 자료를 분석해보면 경기도의 건설업 지역내총부가가치는 1985년 1조274억원에서 2022년 37조6천260억원으로 35.6배 증가했다. 이는 전국 건설업 총부가가치의 31.1%에 해당한다. 인천은 같은 기간 3천402억원에서 8조7천887억원으로 25.8배 증가했으며, 2022년 기준 건설업 지역내총부가가치 중 서울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다.

수도권 발전 기조가 건설업 부흥을 이끌었고, 이는 다시 지역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흐름은 지금의 건설산업계, 그리고 지금의 경인지역을 있게 한 핵심 동력이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경기도와 인천은 수도권이라는 입지와 초기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건설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견인차”라며 “산업단지의 태동부터 자동차, 화학 등 주요 산업의 기반이 경기도에서 마련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건설 수요로 이어져 기술 축적의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한강이라는 풍부한 수자원은 산업용수 공급뿐 아니라 광범위한 건설 활동을 가능하게 한 주요 자원”이라고 분석했다.

인천에 대해서는 “원자재 수입과 제품 수출의 관문으로서 인천항은 인프라 확장을 주도해 수도권 물류 중심지로서 건설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역의 산업 기반 위로 성장한 건설산업이 광복 80주년을 기점으로 맞이한 시대의 전환점에서, 기존의 방식을 탈피해 도약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개최한 ‘2025 건설산업 혁신을 위한 재탄생 세미나’에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자 간 협력, 청년층 유입, 윤리경영 및 ESG 확대를 통해 건설업을 ‘사람 중심 산업’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분절된 법체계의 통합 개편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 ▲R&D 투자 확대 ▲공정한 계약·조달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또한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 스마트 도시 조성, 친환경 인프라 개발, 건설 금융 시스템 혁신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건설산업이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며 “이번 전략이 새로운 도약의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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