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 정상화와 6·3 시위

2025-06-02

시위는 석 달째 계속됐다(사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이 1964년 3월부터 재개되었기 때문이다. 야당이었던 민정당(民政黨)의 윤보선 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가 출범했고 대학생들이 선봉에 섰다. 3월 24일 서울 시내 각 대학에서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일어났고 학생 시위는 전국 중·고교로 번졌다.

시위는 6월 3일 정오를 전후하여 정점에 달했다. 서울 시내 1만2000여 명의 대학생이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하며 도심으로 진출했다. 경찰은 저지하려 했지만 학생들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오후 2시경 종로·을지로·청계천까지 시위대가 진출했다. 심지어 일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결국 오후 8시 서울 전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은 51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지지부진했다. 국민감정이 곱지 않았거니와 독립운동가였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일본에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가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4·19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고 5·16으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 차원에서 한일 협정을 원했다. 일본은 미국을 거스를 생각이 없었으며 한국은 일본의 경제 성장을 따라잡고 싶어했다. 격렬한 시위로도 막을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한일 협정을 추진하던 사람들뿐 아니라 반대하던 사람들까지 힘을 모은 덕분일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부정 선거와 독재, 군사 정변으로 얼룩졌던 나라가 모범적인 민주국가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후회 없이 투표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며, 대한민국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으는 날이 되기를 희망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