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실물 이전제, 지난달 말 시행… '은행→증권사' 자금 이동 예상 빗나가
제도 시행 후 5대 은행 퇴직연금 적립액 되려 증가... 지난달 말 대비 4538억원↑
제도의 한계·은행권의 '수성' 노력·가입자 무관심 등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돼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퇴직연금 실물이전제 시행 효과가 아직까지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은행권에서 증권사로의 대규모 자금 이동이 예상됐지만 되려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액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운용기관 변경이 제한적인 제도의 한계점과 각 은행의 자금 수성 노력, 퇴직연금에 대한 가입자의 무관심 등이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9일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177조1266억원으로 퇴직연금 실물이전제 시행 이전인 지난달 말(176조6728억원) 대비 4538억원 늘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제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운용상품을 매도(해지)하지 않고 퇴직연금 사업자(운용기관)만 바꿔 이전할 수 있는 서비스로 지난달 31일부터 시행됐다. 이전에는 퇴직연금 사업자 변경 시 기존 상품을 매도 또는 해지해 현금화한 후 다시 가입해야 했기 때문에 중도해지 금리, 기회비용 등의 손실이 발생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제도 시행으로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적립액 규모는 은행권이 압도적이지만 퇴직연금 사업자 변경 시 가입자가 부담하는 손실이 적잖이 줄어든 만큼 수익률과 수수료 등에서 앞서는 증권사로 대규모 '머니무브'가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은행(198조원)이 증권사(86조7397억원)를 크게 앞질렀으나 수익률과 수수료 등에서는 증권사가 우위를 점했다. 지난해 기준 퇴직연금 상품 수익률은 은행이 4.87%, 증권사가 7.11%였으며 수수료는 은행이 0.412%, 증권사가 0.325%였다.
금융권의 예상과 달리 퇴직연금 실물이전제 시행에도 자금 이동이 더딘 원인으로는 가장 먼저 제도의 한계점이 꼽힌다. '갈아타기'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영제도), 리츠, 보험계약 등의 상품은 이전이 불가능하며, 이전이 가능한 상품이라도 옮기고자 하는 운용기관이 해당 상품을 취급 중인 경우에만 이전할 수 있다. 또한 퇴직연금 유형(DB·DC·IRP)이 동일해야 이전할 수 있으며, DB·DC형의 경우 회사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운용기관 간에만 이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은행권의 '총력전'이 증권사로 갈아타려는 고객을 붙잡고 주요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액을 늘렸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현재 각 은행은 제도 시행에 맞춰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등 젊은 고객이 선호하는 퇴직연금 상품을 적극 확대하는 한편, 인기 연예인을 앞세운 광고를 선보이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또, 현장 은행원들 역시 실적 평가 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퇴직연금의 수성 및 추가 유치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퇴직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무관심으로 적립액의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몰려 있다는 점도 예상과 다른 결과를 초래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원리금 보장 상품의 경우 수익률이 연 2~3%대로 낮고 운용기관에 따른 수익률 차이도 거의 없어 굳이 실물이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제도 시행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퇴직연금은 연말에 적립 및 이동 수요가 집중되는 터라 본격적인 제도 시행 효과는 내년 초부터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통상 가입자들은 세제 혜택을 얻기 위해 연말에 퇴직연금을 집중 납입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들 또한 연말 결산 시 퇴직연금의 추가 납입을 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 제도 시행 효과를 어떻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퇴직연금 적립액에) 연말 수요가 반영되는 내년 초에야 제도 시행 효과를 제대로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준성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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